o 과 제 명 : 『중국제국쇠망사』, 리상 지음, 정광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09.8.10간, 신국판.
□ 가장 인상적인 구절
- 저자는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거대한 국가가 망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연인데 저자가 뜬 구름 일어나는데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실상이 허상으로 사라진 점을 강조한 것은 정치와 권력 지도자에게 교훈을 주려 한 것 같다. 중국제국의 침몰과정에서는 지도층의 무능과 부패 및 환관의 영향 등이 인상적이었다.
- 무능, 책을 열자마자 소제목부터 ‘진 나라 군주 무능’이란 내용의 글귀가 눈에 뜨인다.
· ‘이사가 죽으면서 조고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절대 권력을 갖는다. 이처럼 어리석은 군주와 간사한 신하로 조합된 왕조가 어떻게 만대를 이을 수 있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진 왕조는 농민봉기의 격렬한 파도에 전복되고 만다.’(25쪽)
· ‘그러나 역사 속 인물은 후대의 평가를 받는 법, 사람들은 유비와 제갈량을 기념하기 위해 성도 근교에 무후사를 세웠다. 무후사는 당대에 지어졌다. 대시인 두보는 “승상의 사당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금관성 밖에 측백나무만 가득 하네”라는 시로 무후사를 읊기도 했다. 지금의 무후사는 청 강희 연간에 중건된 것이다. 사당 안에는 유비와 제갈량의 금빛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관우와 장비를 비롯한 촉한 문무 관원들의 조각상도 있다. 다만 유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원래는 무후사 안에 유선의 조각상이 있었으나 송대와 명대의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음과 무능을 욕하며 수차례 조각상을 훼손했고, 그 이후로 다시는 세워지지 않았다고 한다.’(160쪽)
· ‘어떤 때는 이런 취미가 황제의 어리석음을 불러오는 직접적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불행히도 희종이 바로 그랬다. 어쩌면 놀기를 그리 좋아해서 죽은 후에도 <희종>이라는 시호를 붙였는지도 모른다. ....(중략)....... 황제로서 놀기만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허물이었다. 어떤 사람은 이현이 사물에 정신이 팔려 뜻을 잃었다고 했으나, 사실 그는 잃을 뜻 자체가 없었다. “본업에 힘쓰지 않았다”라는 평가는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186쪽)
- 무능과 더불어 종말의 동반자는 부패라 할 수 있는데 책 곳곳에서 강조한 말이 나온다.
· ‘서한 말기에는 사회 문제가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한대 초부터 백성과 함께 쉬며 쌓아둔 국가의 재산은 무제 때에 거의 다 써버렸다. .....(중략)... 토지 겸병도 큰 문제였다. 나라의 토지가 호족들의 사유지로 되고, 농민들이 개인의 노비로 전락했다. 그렇잖아도 부족한 땅과 사람이 호족들의 손에 넘어가면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재원과 노동력은 고갈되었다. 농사를 근본으로 하는 사회가 기초부터 심하게 흔들린 것이다.’ (78쪽)
· ‘남이야 욕하든 말든 황제와 간신들은 사치를 멈추지 않았다. 송 이종은 간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사치를 알아서 해결해 줄 환관까지 곁에 두었다. 환관을 총애하는 황제는 대부분 망국에서 멀지 않은 황제였다.’(278쪽)
· ‘명대 후기에는 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관의 세력이 컸다. 당시 수도 경사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태감이 여럿 나타난다. 그들은 명조 말기 도성의 축소판이었다. 그들을 통해서 우리는 황제의 어리석음, 궁정의 분쟁, 조정의 부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명 왕조의 역사에서 이 세 가지를 한꺼번에 드러낸 사람은 단 한명, 태감 위충현뿐이다.’(354쪽)
- 무능과 부패는 대부분 따라다니며 나라를 좀 먹게 하고 결국에는 백성의 동요를 유발하여 패망에 이르는데 여기에 이민족 침략에 대한 아픔을 상기시키는 글귀도 있다.
· ‘금군은 금은과 비단 외에도 황제의 옥새, 예복, 전국지도, 악기, 제기, 골동품을 빼앗고 장인, 기녀, 부녀자, 내시, 승려, 의원, 배우, 후비, 친왕 등 수천 명을 포로로 데려갔다. 휘종도 금의 군영으로 압송되었다. 금 조정에서는 휘종, 흠종 두 황제를 폐위해 군대의 노예로 삼고 공사를 막론한 동경성 안의 모든 재물을 털어 오라고 명한다. 이로써 북송은 종말을 고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정강의 변”이다.’(260쪽)
- 그렇다. ‘제국의 권력은 역사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교체를 거듭하고 사람은 역사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등장했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왕조 말기의 어두운 정치상과 권력의 침몰, 사회의 분열, 그리고 그 안에서 타락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7쪽, 머리말) 『중국제국쇠망사』란 책자 속에서는 저자가 의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글들이 수없이 반복하여 등장하고 때론 정치가나 시인 묵객들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면서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있다.
□ 독후감
Ⅰ 대하드라마
· 망해가는 대제국의 마지막 모습을 본다는 것이 유쾌하지만은 않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고상하게 살던 귀부인이 험하게 죽고 나자 치마를 들춰보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대단할수록, 화려할수록 뒷모습은 더 부끄럽다. 때론 그대로 묻어 두었으면 하는 것들도 많으리라. 그럼에도 이를 살핀다는 것은 미래 교훈으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 이 책은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한 이후 명이 사라질 때까지 11개 국의 멸망 과정을 다뤘다. 한마디로 역사의 드라마를 펼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춘추전국시대와 청나라를 거친 현대까지 수많은 사건과 사연들이 더하여 역사책이 되고 소설과 영화로 그리고 TV로 제작되어 중국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인류가 흥미를 갖고 보게 된다.
Ⅱ. 영웅의 탄생
· 「난세는 영웅을 낳는다.」라는 말이 있다. 미인과 명마까지 따라 오면 더욱 좋다. 제국 하나가 사라지면 또 다른 제국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영웅의 출현은 필연적이다.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은 수도 없이 잿더미에서 피어난 꽃이 되어야 했다.
·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진시황은 아주 몹쓸 인간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그가 그만큼 영웅이었다는 것을 반증하는지도 모른다. 중국이 고대 역사시대로 들어서면서 500년간 춘추전국시대의 군소 국가 간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를 진의 왕 영정이 통일시켜 전쟁을 끝냈다. 이는 영웅 소리를 들어 충분하기에 장예모 감독의 영화 『영웅』도 만들어졌다.
· 영웅은 일화를 만들어 낸다. 또한 국가 간의 전쟁을 거쳐 통치체제를 비롯해 각종의 기술 발달과 문화도 더불어 발전했다. <오월동주>나 <와신상담> 같이 전쟁에 얽힌 인물을 다룬 사자성어가 수도 없이 나오고 제자백가 같은 다양한 학문도 나올 수 있었다.
· 영웅은 역사에 있어 최고의 매력이다. 진시황이 고대 초기의 최대 일인 영웅이었다면 진국이 멸망함으로 인해 등장하는 유방과 항우는 호적수라는 짝을 이루어 후세에 많은 교훈을 주고 문화적으로도 승화된다. 장기판이 한과 초의 전투 장면을 배경으로 하고 패왕별회가 경극으로 고착된 것은 아마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 한이 멸망한 후 천하가 위, 촉, 오로 삼분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린 영웅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적벽대전」은 그 용어 하나만으로도 많은 영웅들을 얘기 한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유비, 관우, 장비를 논하고 제갈공명과 조조를 거론한다.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롯해 서구에서도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을 다룬다, 중국 식당에 관우의 초상화가 걸린 것을 예사롭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되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 이 책에서도 매우 많은 영웅들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그러나 허물어져 가는 대형건물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주로 다뤘기 때문에 좋은 것 보다는 추잡한 일면이 더 많이 보인다. 망해가는 송을 구하기 위에 몸을 바친 악비의 충성심과 무용담을 펼칠 수는 없었고 그를 모함한 정대전의 가증스런 행태를 부각시키는데 중점을 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Ⅲ. 제국의 침몰
· 우리는 흔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고 노래한다. 무엇이든 생겨나면 소멸되는 것이 우주의 섭리다. 아무리 굳건한 제국이라도 이의 범주에 벗어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이 침몰하는 것에는 각각 다른 이유가 있다. 저자는 이를 분석하고 있다.
· 아주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제국이 멸망해 가는 과정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난세에 태어 난 영웅이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천하를 통일하거나 세상의 어지러움을 진정시키고 난 후 일정 세월 흐르면 무능하거나 황음무도한 군주가 나오고 간신과 못된 환관이 득세하며 백성은 다시 도탄에 빠지고 결국에는 나라가 망한다는 것이다.
· 『중국제국쇠망사』에서 제목으로 뽑은 문구를 보면 제국의 멸망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둔하고 무능한 군주에게 기회는 없다’, ‘성급한 개혁은 내부로부터 무너진다’ ‘권력은 사치와 향락으로 썩어간다’, ‘아첨의 성을 지어 군주의 눈과 귀를 막다’, ‘피 튀기는 당쟁 속에 몰락의 그림자 드리우다’ 등등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 그런데 저자가 관과 했든 아니면 일부러 외면했든 진짜 중요한 것은 이민족으로부터의 도전을 받고 패한 것이 하나의 원인도 될 수 있다고 하겠다. 한나라가 망한 후 삼국이 등장하나 어느 나라도 천하의 패자가 되지 못하고 북방 이민족에게 눌려 남북조 시대를 지내야 했으며 북송은 여진의 금나라에, 남송은 몽고의 원나라에, 명은 만주족의 청나라에 멸망당한 것은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다.
Ⅳ. 백성의 고통
· 중국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한다. 남자는 창을 들 수 있을 정도의 나이가 되면 전쟁터에 나가야 되니 농사는 부녀자들의 몫이었다. 그것도 군량미로 절반이상 빼앗겨야 하니 먹고 살기 힘들 수밖에 없으며 흉년이 들면 궁핍의 정도는 더욱 심했다.
· 전쟁을 일으키면 보통 10년이나 20년도 끌어야한다. 군주가 원한을 잊지 않고 복수의 집념을 불태우기 위해 오랜 기간 동안 쓸개를 빨고,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면 그 부하의 입장은 어떠했을 것이며 또 백성들의 고충은 불을 보듯 훤하게 된다.
· 다소는 과장이 있다하더라도 적벽대전에 투입된 병력이 100만 명이라고 하는데 그 많은 수의 상당수가 전사해 시산혈해를 이루었다면 사망자 가족의 생활은 어떠했고 시체의 처리와 새로운 병력 보충 위한 횡포가 어떠했을지 잠작이 가능하다.
· 군주의 황음무도한 행태나 간신의 가렴주구, 수도 없는 환관의 사리사욕을 위한 수탈 등으로 인한 폐해에 대해 “호랑이에 물려 죽는 것 보다 무섭다”라는 용어가 나온 것도 얼마나 백성들의 고통이 심했는가를 알려준다.
· 그러기에 저자는 강조 차원에서 ‘낙양의 백성들은 배를 채울 음식도, 몸을 덮을 옷도 없었다. 흙을 파먹기도 하고, 심지어 자식을 바꿔 먹기도 했다.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에 위치한 사람들은 더는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이 저주의 사슬을 끊어버리고자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111쪽)라는 표현을 하게 되었나 보다.
· 백성들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폭동을 일으키고 이를 주도하는 자는 괴수가 아니면 영웅이 되었다. 때로는 종교 집단 형식으로 때로는 도적 형식으로 군사력이 길러지고 그 중 상당수는 토벌됐지만 홍건을 쓴 집단은 주원장의 주도아래 명나라를 이룬다.
Ⅴ. 사라진 수도와 교훈
· 우리는 흔히 제국의 흥망성쇠를 말할 때 수도의 번성함을 들춘다. 중국은 하왕조 이후 총 217곳에 수도가 정해졌었다고 하는데 보통 5대 또는 7대 고대도시를 일컫고 있다. 수도는 “화려함으로 치장한 함정”이니 “왕국의 야명주”니 하면서 회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수도에 제국의 수난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버린 고대 수도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중국 왕조의 번창함과 비장함을 동시에 맛보게 되는데 여기에서 느끼는 감정만큼은 서로 다를 수 있으며 특히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 국민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한다.
· 역사의 반복이 맞는다면 중국은 머지않아 다시 망할 것이다. 세계를 지배하려는 패권시대를 거쳐 티벳과 신장을 비롯한 소수 민족국가의 독립이 촉진되면서 분열된 후 새로운 국가가 될 것인바 우리는 미리 대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끝.
'문학 > 수필과 산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상이 얼마나 되냐고 묻지 마세요 (0) | 2014.07.04 |
---|---|
이도종 목사 추모비 발문 (0) | 2014.06.25 |
<소설> 북해도에 휘날리는 인공기-시놉시스 (0) | 2014.01.29 |
길(道)-현대문예작가회 동인지(우영팥듸 송키) 원고 (0) | 2013.11.19 |
[스크랩] 비자림 숲길을 걸으며 (0) | 2013.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