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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스크랩] 비자림 숲길을 걸으며

비자림 숲길을 걸으며

 

 

 

천년의 생명이

아직도 청춘을 노래하며

이곳을 찾는이에게

정령을 조금씩 나눠준다고 하는

그런 비자림을 찾았다.

 

 

 

 

비자나무 좋은 것이 어찌 어제 오늘 일이랴!

중생대에서부터 수백억년을 살아남은 생명력은 차치하고

죽어서도 바둑판으로 남아 안방 손님 되어있다.

바둑판 만들어 상납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고목이 잘려나갔다고 함에도

아직도 이렇게 숲을 이루며 살아남은 논리는 신통방통하다.

 

 

 

비자림도 관광코스에 들어가 있다.

개별 관광객은 물론 대형버스도 매일 여러대 와서

알록달록 색칠한 여러지역 관광객들을 꾸역꾸역 토해낸다.

특별한 안내자는 필요없을 것이다.

곳곳의 안내판이 가이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푸르름이란 늘 좋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날씨가 서늘해지면

파란색은 다소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머리카락에 찬 공기가 스치면

자켓의 깃은 올리고 목은 쏙 들어게 만든 후

  손은 호주머니에 집어 넣은채

발길은 터벅거린다.

온갖 상념의 그림자가 머리속을 오가는 사이에

길을 걷는 자신을 잃어버릴때가 있다.

 

 

 

알수없어라

이 길은 어느곳으로 이어지는가

길이 있어 걸으면서

가는 곳 알 수 없으니 안타까워라

인생의 종점을 그 누가 모르리

알면서도 모르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

길이 끝나는 지점에 섰을 때 뒤돌아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는 것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비자나무 열매는 구충제로 쓰였다고 한다.

옛날에는 배가 아프면

뱃속의 여러놈들이 발광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런 못된 놈들 잡는데 필요했을 것이다.

열매는 아무리 주워가도 해가 바뀌면 또 만들어내니

나무의 생명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산감은 열매를 못 줍게 했고

아이들은 몰래 줍는 스릴을 느껴야 했던 때도 있었다.

아이들이 열매를 많이 주워 달아날 때서야

산감은 적발을 해 혼을 내며 다시오지말라 교육을 시키고

주운 열매 독차지 했다나.........

 

 

 

 

닭뼉다귀

아니 그냥 닭뼈

먹기는 그렇고 버리기는 아깝다고 하는 계륵

같은 몸에서 나왔으면서도 가치는 다르다.

닭뼈는 쉽게 부서지지 않아 오래 간다.

날카롭게 갈라지는 닭뼈는

개나 돼지의 목을

괴롭히기도 한다

 

비자나무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지만 햇볕도 필요하다고 한다.

빛을 많이 받을 수 없는 가지는 스스로 몸에서 떨구는데

 그런 가지가 땅바닥에 떨어져 삭아가면서

마지막 힘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 닭 뼈다구라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땐

비자림에서는 인간과 동물 모두가

닭 잡아 먹는 것이 유행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 오해할 것이다.

 

 

 

 

홍일점은 언제 어디서나 대우받는다.

약간은 지나긴 했지만

아직도 산엔 단풍이 곱다.

빨갛고 노랗고 온갖 색조의 장식품들이 널려있다.

그러데서 이런 단풍은

우습게 보이련만

온통 주변이 푸른 이곳에서만은

눈에 확 뜨인다.

많은 시선을 받게 됨은 당연하다.

이 단풍나무는

지혜가 대단히 높아

있을 곳을 잘 선택한 모양이다.

 

 

 

 

비자나무 열매로 담은 술은 최고로 인정받는다 한다.

 

그 술 한 잔은

모든 근심 걱정 사라지게 하고

그 술 두 잔은

주변 사람 모두를 친구가 되게 하며

그 술 세 잔은

인생의 가치를 높여 삶의 활력소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비자나무 숲길을 걸으면 열매로 만든 술의 향기만을 맡고 가게 된다.

 

 

 

 

어디에서 왔는가

가는 곳 모르는데 온 곳은 또 어찌 알겠는고

길이 있어

그냥 걸을뿐이다.

하늘은 보일듯 말듯

주변엔 온통 비자나무

가지엔 아름다운 요정들이 앉아

인간들이 어쩌구 저쩌구 수다떨구 있구나

 

 

 

 

 

멀리서 볼땐

웅장하고 멋있게만 보였겠지

그러나 척박한 땅에서 살다보니

험한 모습이 더 많단다

결코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그런 고통 말이다.

 

 

 

 

모질고 강한 목숨

오래도 살다보니

이런저런 기이한 형태 나타났는데

인간들은 연리지니 뭐니 하며

상품 취급하고 있다

 

나무가 어찌

아니라 항의할 수 있겠는가

어쩔수 없이 묵묵히 서있어야 하는 존재이니라

 

 

 

 

 

구상나무는 살아 백년 못살아 백년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말이 그렇다고 하는데

이 비자나무는 진짜로 살아 천년이란다

아니 천년은 그냥 하는 말이고

실제로는 팔백살이라 한다

그 나이도 정확히 센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름대로 조사 방법에서 그렇다고 하니 그런줄 알아주자

그런데 새천년비자나무란 이름이 붙었다

새천년은 또 무엇인가

정치색이 들어있어

입맛이 쓰다.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상품 취급하는 것은 매우 기분 나쁘다만

이렇게 멋진 여인네가

사진찍어 주는 맛에 산다

나를 알아 준 그대를

세세년년 잊지않아주마

 

 

 

 

 

비자림 곳곳에 한라돌쩌귀가 많이도 피어 있다.

여름이 끝날 때쯤 피는 꽃이라

찬바람이 불면 사라지는데

여기엔 지금도 한창이다,

꽃말이 그리움이라는 투구꽃 계열의 이 꽃이

시 한수를 연상케 하고 있다.

 

 

한라돌쩌귀의 그리움

 

목은 단정히 세웠지만

모자 푹 눌러쓴 채

마음은 연이 되어 산을 넘고

연줄로 전해 오는 소식 궁금해하며

오늘도 외로움을 달랜다

 

먼 곳으로 보이는 저 오름엔

어떤 돌쩌귀 살고 있을까

비취 옷 추스르며 몸을 단정히 하고

번뇌를 달래려 승무도 추어 보지만

하는 일 모두 덧없다

 

쓸쓸해 보이지 않으려

여느 때처럼 노래도 불러 보았건만

먼 곳을 응시하는 자세부터가 그래서

언제까지라도 그리움 먹고 사는

한라돌쩌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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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돌쩌귀; 섬투구꽃, 한라비꽃, 섬초오 등이 이름이 있다. 제주도의 한라산과 오름 등지에서 자생하며 부엽층이 두껍게 쌓인 비옥하고 습기 많은 지형에서 주로 자란다. 다섯 장의 꽃잎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고 한다. 투구꽃을 비롯해 25종의 초오속 식물이 공통으로 비슷한 독성을 갖고 있으며 사약의 재료로 사용했는데 독을 제거하면 원기회복의 좋은 약재가 된다고 한다. 꽃말은 "그리움"

 

 

 

비자림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길의 옆엔 돌담이 쌓여 있고

그 돌담위에는 송악을 비롯해 줄사철, 으름덩굴, 마삭줄, 남오미자, 노박덩굴 등

여러 줄기식물들이 얽혀 있다.

그런 가운데 줄사철의 열매가 막 씨앗을 터뜨리려 하고 있는 장면이 눈에 뜨였다.

 

 

 

 

 

길이 있으면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좁은 길은 적은 수의 사람이

크고 넓은 길은 많은 사람과 차량이 왕래할 것이다.

길은 사람들을 수용한다.

열려있으나까 어서 오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길을 이용하면서도

길에 숨어 있는 철학을 알지 못한다.

이것저것 알면 머리가 아프기 때문일까?

길은 길이다.

 

 

출처 : 유유의 습작노트
글쓴이 : 봉명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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