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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스크랩] 팽나무 이야기

 

 

팽나무를 사모한 바람

 

 

당신도 이제는 늙어 보입니다. 당신 몸을 스치는 내 손길이 퍽이나 거친 느낌을 받았고 가지 사이를 빠져 나가는 내 치맛자락이 찢어질까 두려울 정도로 딱딱한 상태가 확인되었답니다. 피부가 헐고 갈라지고 부서지는 것은 세월 탓이라 할 수 있지만 나뭇가지가 찢어지고 바스러지는 것은 또 어떤 영문인지 모르겠더군요. 나뭇잎조차 힘없이 달려 있고 그나마 바닥을 딛고 줄기를 지탱하고 있는 뿌리도 상당밖으로 나와 처참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답니다.

 

 

 

 

 

 

젊은 시절 의젓했던 당신 모습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보면 감개가 무량하답니다. 당신은 큰 키에 무성한 잎과 꽃을 갖고 있으면서 늠름함을 자랑했답니다. 사람들이 봄철 새잎을 따서 나물 무쳐 먹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고 가을철 되면 열매를 따먹거나 기름 짜 사용하는가 하면 수피를 한의사가 약재로 사용하는데 대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했답니다. 한 여름날 마을사람들은 당신이 만들어 주는 그늘 밑에 모여 세상일을 담론하고 음식을 먹으며 당신께 고마워했지요. 당신은 마을의 수호신이 되기도 했고 이정표가 되기도 했으며 여늬때엔 오색 띠로 몸을 두른 무당이 되기도 했답니다.

 

 

 

 

 

 

당신을 맴돈지도 이제 500년이 넘었군요. 새싹이 돋아나 자라기 시작한 것이 어제일 같은데 부지불식간에 고목이 되어버렸답니다. 무던히도 많은 해가 소리 없이 지나버렸지요. 그동안 당신에게 부드러운 입김불어넣기도 하였고 당신이 알던 모르던 따뜻한 포옹과 황홀한 속삭임을 셀 수 없이 여러 번에 걸쳐 주었답니다. 물론 미운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랍니다. 내 보살핌을 몰라주는 당신이 원망스러워 있는 힘 없는 힘 모아 때린 적도 있고 폭우와 공동으로 괴롭힌 때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번개까지 빌려와 모진 행동을 한 사례도 있었지요. 그래도 분이 안 풀릴 때면 땅에서 돌과 모래들을 들어 치기도 했고 땅신에게 부탁하여 지진을 일으켜 뿌리까지 못살게 굴었던 치졸함이 후회스럽기도 하답니다. 참으로 애증이 교차되는 세월이 흘렀지요.

 

 

 

 

 

 

당신은 아직도 천년은 넘게 살 것 같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긴 세월산다고 할 지라도 나는 끝까지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때로는 웃으며 때로는 울며 희노애락을 같이하며 당신 몸이 다 삭아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당신의 일생을 지켜 볼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 그리고 구름도 비도 새도 꽃도 온갖 동물과 곤충들도 당신이 살아역정을 기억할 것입니다. 당신과 유달리 가까웠던 인간은 특히나 당신이 존재했던 흔적을 기록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가 소멸되지 않는 한 당신의 이름은 이어질 것이고 당신의 후손도 지속되겠지요. 이러한 모든 과정을 나는 끝까지 바라다보려 한답니다.

 

 

 

 

 

 

당신의 이름은 팽나무라고 합니다. 당신은 아이들이 당신의 열매인 팽으로 팽총을 만들어 장난을 할 때 같이 놀아 주었고 온갖 벌레들이 잎을 괴롭혀도 모른 척 하였으며 가구 목재나 땔감으로 쓴다고 해도 불평불만 하지 않았답니다. 이러한 훌륭한 몸가짐이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혈통이 좋아서 그런지 어느 종족은 천연기념물이 되었고 심지어는 재산이 많아 세금을 내는 나무도 있다고 한답니다. 그래서 우리 바람세계에서는 당신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데 대해 매우 자랑스러운 긍지를 갖고 있답니다. 무한한 영광이지요. 끝으로 당신에게 알려줄 말이 있는데 당신 이름이 지역에 따라 펑나무, 게팽, 포구나무, 달주나무, 매태나무라고도 하지만 제주에서는 “퐁낭”이라고 부른답니다.

 

                                             - 유유 에세이시집 <바람의 개똥철학> 속에서 -

 

 

 

 

출처 : 방송대 제주지역대학 길 생태해설사 4기
글쓴이 : 유 시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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