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자료나 사진에 대표적으로 등장하는 앙코르왓 반영 모습>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와 베트남의 하롱베이는 많은 사람들이 갔다 온 대표적인 관광지임에도 갈 기회가 없어서 아직 못 가본 상태였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사계절 산악회에서 마침 같은 코스의 단체 관광을 간다고 하고 마침 지인이 있던터라 그 산악회에 동행하여 여행을 하게 되었다.
2014. 9.29 오전 10시 15분 인천공항에서 베트남항공편으로 출발하여 베트남의 호치민시를 경유, 저녁 5시 40분경 캄포디아 씨엠립공항에 도착하였다.
앙코르와트를 가기위해 예전에는 캄보디아의 수도인 프놈펜에서 비행기를 내려 육로로 장시간 이동해야 했었는데
몇년전부터는 비록 작지만 씨엠립공항을 만들어 편리하게 이용한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에도 있었다.
공항은 간이 비행장 같아 오버브릿지는 물론 특정 보행로도 없이 그냥 여객기에서 내려 도보로 흩어져 입국장까지 걸어들어 간다.
캄보디아와의 어색한 만남은 바로 이 공항에서 시작된다.
출입국카드와 세관신고서를 꼼꼼히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일행 중에는 눈도 어둡고 해서 잘 작성하지 못한는 사람도 많았다.
더욱이 현지에서 비자신청서를 작성해 즉석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막상 신청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우선 미화 20$을 공식적으로 지불했다.
그러려니 하고 마지막 입국 신고서를 제출하고 나가려니 "완 달라"를 내란다.
어쩌나 볼 요랑으로 "돈이 없다"고 했더니 신고서를 가르키며 몇 가지 다시 써서 오라고 퇴짜를 놓고 다른 곳을 쳐다 보았다.
다른 창구를 보니 일행들이 벌레씹은 얼굴을 하고 모두 1$ 지폐를 내고 있기에 어쩔수 없이 따라하게 되었다.
이 시간 이후로 캄보디아에 머무는 동안 가는 곳곳마다 "완 달라" 또는 "일 딸러" 아니면 "천원"을 달래는 구걸 소리에 머리를 흔들어야 했다.
관광지에 사진이 붙어 있는 캄보디아의 지도자가 과연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까 궁금하였다.
입국 절차를 거쳐 밖으로 나오니 현지 가이드가 마중을 하면서 입국 비자 비용과 급행료 "1 달러"에 대한 기분 나쁜 인상을 이해해 주라고 하였다.
공항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숙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4성급 호텔인 골디아나앙코르호텔이었는데 이곳 대부분의 호텔이름 마지막에 앙코르란 명칭을 붙여 놓았다.
가이드와 여행사측 인솔자가 호텔 체크인을 하는 동안 일행들은 로비에 앉아 입국장 부조리 1$ 얘기를 하였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다음날부터 캄보디아를 떠날 때까지 구걸하는 어린이나 장애인 또는 앵벌이들의 1$ 또는 "천 원"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은 맑음으로 시작하였기에 호텔방에서 일출을 보았다.
야자수를 배경으로 한 태양의 첫날 인사는 기분을 전환시키기에 충분했다.
캄보디아의 건축 양식을 대표하는 지붕의 모습도 보였다.
남향과 다소 높은 층으로 방을 배정받은 행운이 이런 영상을 담을 수 있게 하였다.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버스가 와 있었다.
하나투어 전용 버스가 있었나보다. 여행을 주선하고 있는 "명품고속관광"의 팻말이 창문에 놓여있다.
우리는 조찬을 한 후 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맨 처음 들린 곳은 앙코르 유적지 통합 입장권을 사는 곳이다.
단체로 표를 구입하기는 하지만 입장권에 사진을 넣어야 하기 때문에 줄을 서서 순서대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하루종일 가는 곳마다 입장권을 확인하기 때문에 입장권을 가이드가 사전 준비해 온 패찰에 넣어 목에 걸고 다니게 되었다.
입장권 패찰을 목에 걸고 인증샷을 날리고 있는 일행들
처음 들린 곳은 캄보디아 주요 목적지이자 최고 관광지인 앙코르왓이었다.
앙코르 와트의 외벽은 총 5.5km라고 하며 이 벽 밖으로 폭 200m의 해자가 설치되어 있으니 해자의 길이는 총 6km가 넘을 것이다.
해자의 폭은 정확히 190여m이지만 크메르인들의 척도로는 108 피엄(phyeam)이라 하는데 108은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를 지칭하는 것으로도 이해되지만
힌두교 관념에서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절대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속세에서 신들의 세계를 이어주는 해자의 돌다리는 말세를 지나는 것이며, 108번뇌를 깨는 것이며, 우주의 중심으로 향하는 코라의 첫 걸음이라 한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초에 건립되었다.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뜻하고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당시 크메르족은 왕과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유적은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가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 불교도가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시게 됨에 따라 불교사원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건물·장식·부조(浮彫) 등 모든 면에서 바라문교 사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바깥벽은 동서 1,500m 남북 1,300m의 직사각형으로 웅장한 규모이며 정면은 서쪽을 향한다. 바깥벽 안쪽에서 육교로 너비 190m의 해자(垓字)를 건너면 3기(基)의 탑(塔)과 함께 길다란 익랑(翼廊)이 있고 여기서 돌을 깔아놓은 참배로(參拜路)를 따라 475 m쯤 가면 중앙사원에 다다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뱀은 인류 역사상 인간과 더불어 가장 먼저 등장한 존재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물론 이집트 파라오의 상징이며 중국 신화인 복희와 여와의 반쪽이며 지식의 헤르메스 뱀지팡이를 비롯해 많은 인종이 다루었다.
크메르인도 뱀신을 숭상하였다고 한다.
그들 자체가 뱀의 후예라고 믿었는데 이는 본래 힌두교에서 전파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크메르인이 믿는 뱀신은 나가라고 하였다.
머리는 7개로 코브라처럼 바짝 세우고 몸통은 길어 앙코르 와트 다리 앞에서 부터 본전까지 이어져 있는데 앙코르 유적지 모든 곳에서 흔적이 보인다.
대부분 훼손되고 남아있는 것도 마모된 상태이기 때문에 앙코르 왓 입구에 세워진 이 사진 대상은 복원된 것이라 한다.
나가 옆에는 꼬리 없는 사자인지 해태인지 석상도 보인다.
본 건물 앞에 원형 가깝게 남아있는 나가의 머리와 몸통 난간 및 꼬리 - 많이 마모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조각이 되어 있는 흔적은 보인다.
수백년 동안 정글 속에 갇혀있다가 나왔기 때문에 나무 등 자연적으로 많이 훼손되어 있지만 건물 앞에 잔디밭을 조성해 놓고 보니 그럴듯하다.
앙코르 와트가 세계7대 불가사의로 인정받는 요인 중 하나는 건물의 조각이라고 한다.
건물을 만든 돌이 인근에는 없는 사암이며 그것도 매우 큰 부피와 무게를 갖고 있는데 이를 40년만에 완성한 것도 현대의 장비로도 불가능한 것이라 하지만
건물 벽면은 물론 높은 곳과 낮의 곳의 보이지 않는 아래면에까지 조각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걸작이라 하겠다.
사원의 대문격인 정문 신전을 나설즈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열대 몬순기후의 스콜 맛을 보라는 것이었다.
계속 내린다면 관광에 지장을 줄 터이지만 한창 땀이 나기 시작하는 시간인지라 더위를 식혀주기에 안성맞춤이 되었다.
비가 그치자 앙코르왓의 최고 포토존이라는 곳에서 각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그래도 38명의 단체 사진 한 장은 남겼다.
그리곤 바로 옆에 있는 과일가게 노천 의자에서 빗물을 닦아낸 후 앉아 야자열매의 단물을 빼먹는 휴식시간을 가졌다.
(팜야자나무 기둥에 활엽수가 기생하여 자라고 있는 모습 기록)
앙코르왓 사원 본관의 석탑은 모두 5개인데 완벽한 대칭으로 인해 정면에서는 3개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그것도 가장 높은 중앙의 탑이 맨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석탑은 멀리서 건물을 돌아갈 때 3개에서 4개로 다시 5개 전부 보이는 기하학적 도형을 지녔다.
5개의 탑과 목욕탕이 설치된 사원 정 중앙을 가기 위해서는 3층 높이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안전하게 난간이 설치되어 있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오르는 것을 포기하였는데
본래의 계단은 좁고 경사도 높았기 때문에 당시의 크메르인들이 어떻게 쉽게 오르내렸을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많이 훼손된 동북쪽 변에 있는 탑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보인다.
가장 높게 솟은 중앙의 거대한 탑은 아직 건재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돌로 만들어진 창틀 사이로 서쪽의 정문 방향 전경이 들어온다.
하단부는 목욕탕으로 쓰여 물이 고여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지금의 5 - 6층 높이에 해당하는 높은 곳까지 물을 끌어 올릴수 있었을지 궁금하다.
내려가는 길은 더욱 조심스럽다.
처음부터 올라가지 않았거나 아니면 먼저 내려간 사람들이 밑에서 기다리면서 내려오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이들 거의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다른 나라 관광객은 어쩌다가 보인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기 좋은 부유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쓴 입맛이 다셔진다.
첫번째 관광코스인 앙코르왓에서 나오는 모습인데 이 많은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 사람들이다.
타고 간 버스편으로 왕코르왓 주차장에서 나와 시내로 돌아왔다.
그리곤 두 번째 코스인 왕코르톰으로 가기 위해 툭툭이라고 불리는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앙코르톰은 앙코르왓에서 불과 1.6km 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 버스가 진입할 수 없어 툭툭이를 타고 가야만 한다고 했다.
주민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것인지 실제 도로나 주차장이 열악한 탓인지는 모르지만 그런대로 시원한 바람을 쐬일 수 있어서 괜찮았다.
작은 도시를 지나 왕코르왓 옆을 통과한 후 숲길로 달리는 기분은 좋았다.
스콜의 영향도 사라져 마구 덥기 시작하는 시간대인지라 바람이 시원했는데 선글라스와 마스크는 꼭 필요한 것 같았다.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타났다.
대문같이 생긴 입구 자체가 석물로 된 조각품이었고 좌우 길 옆으로도 조각 작품을 줄을 서 있는데 원래부터 있던 것이었는지
주변에서 발굴된 것을 옮겨다 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유적지를 들어간다는 분위기를 유지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앙코르톰(*위대한 도시라는 의미)은 왕의 거처를 포함하는 성곽 도시이다. 정면으로는 쿨렌강이 가로 흐른다. 1177년 참파군의 공격을 받아 왕이 죽고 수도가 파괴되었는데 한 왕자가 이 '침략군'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오르니 자야바르만 7세(1181-1218)로서 앙코르톰을 건설한 주인공이다.
앙코르톰은 아무 것도 없는 평지에 새로 건설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던 정치 중심부를 새롭게 수리하고 정리한 건축물이다. 앙코르톰 남쪽 성벽 앞으로 프놈 바켕(Phnom Bakeng)이 있다. 이 프놈 바켕, 즉 바켕 사원을 모신 언덕은 9-10세기 야소바르만 1세가 주위 16㎞ 장방형으로 건설했다는 성곽 도시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으니 앙코르톰을 건설할 당시에 이 지역의 모습을 대략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이 파괴되었지만 몇 가지는 남아 있었다. 왕궁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왕의 수행 장소로 나가(naga)신이 살고 있다고 믿어지던 하늘궁(Phimeanakas)은 10-11세기에 건설된 것이었다. 근처의 바 푸온(Ba Phuon) 동탑(銅塔) 사원은 11세기 시바신에게 헌정된 것이다. 평지에 정사각형으로 자리잡고 있는 앙코르톰의 성벽 둘레는 12㎞ 정도가 되니 옛날 우리나라의 한양을 둘러싸고 건설된 외성곽의 총길이가 평지와 고지를 오르내리면서 꾸불꾸불 18㎞였다는 것과 비교해 보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성벽은 다시 폭이 100m 정도 되는 해자로 둘러싸여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앙코르톰은 많이 파괴되어 있지만 중요한 부분은 그래도 남아 있어 역사 자료로 충분히 활용된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일본 사업체가 복원공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들은 다양한 방면에서 많은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며 복원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밀림 속에서 방치되어 있었지만 돌이란 특성 때문에 비바람을 이기고 원형이 많이 남아 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스님이 관광객들에 대한 탁발인지 축원인지 환영인지 주발을 들고 의식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앙코르톰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얼굴이다. 왕의 다양한 얼굴 표정이라고 한다.
베이온 사원은 자야바르만 7세가 즉위한 시기에 캄보디아에서 대승 불교가 왕실의 주된 종교로 자리잡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가로세로가 각각 60여 미터의 공간(약 1,200평) 안에 있는 총 54개의 거대한 탑들에는 모두 200여 개의 보살 얼굴이 조각되어 있다. 어떤 이는 이를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묵상에 잠겨 있는 이 신비한 표정들을 일러 '앙코르의 미소'라고 부르기도 한다(Rooney 1997 : 162).
이 얼굴들은 앙코르톰으로 들어가는 다섯 개의 문 위에도 있다. 오랜 세월의 때를 묻어서 거무스름하고 이끼가 낀데다 틈틈이 풀이나 나무도 자라고 있어서 다소 우중충해 보이지만 13세기에 주달관(周達觀)이 보았을 때는 각 대문 위 보살상 및 베이온 신전이 모두 금으로 발라져 있었다고 한다. 특히, 베이온을 주달관은 아예 '금탑(金塔)'이라고 줄곧 부르고 있다. [앙코르톰 [Angkor Thom] (동남아시아사, 2007.9.12, 미래엔)]
왕의 거주지였다고 하는 중심부인데 동서남북으로 돌로 된 벽과 통로가 있으며 통로 맞은 편으로 얼굴 모습이 나타난다.
실제로 왕이 살았다면 일상생활에 불편했을 것이 많을 것으로 보이는 환경인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앙코르톰을 통과해 밖으로 나온 뒤편 모습이다. 주변 삼림에는 아직도 이런 모습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세번째로 간 유적지는 뉴스나 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 바로 타프롬 페허 사원이다.
타프롬[ Ta Phrom ] 사원
앙코르톰의 동쪽으로 약 1km 떨어져 있다.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가 어머니의 극랑왕생을 비는 마음에서 12세기 말과 13세기 초에 바욘(Bayon) 양식으로 크게 지어졌으며 원래의 이름은 라야비하라(Rajavihara)였다. 사원의 규모는 가로 600m, 세로 1,000m로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크다. 당시 이 사원을 관리하기 위해 2,500명의 성직자와 12,000명의 하급 성직자가 관리할 정도로 영화를 누렸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폐허 상태로 서서히 파괴되어 가고 있는데 특히 커다란 나무 뿌리에 침식당하고 있는 모습이 신비스럽다. 무화과, 보리수 등의 커다란 나무 뿌리가 벽과 지붕에 내려 앉고 담과 문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자연의 위용을 느낄 수 있다. [두산백과]
거대한 나무가 돌담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얼마나 신기하면 이 곳에 포트존을 설치해 놓고 있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아무리 돌이라 하여도 엄청난 나무 무게를 어찌 견딜 수 있을까!
담장은 점차 허물어져 가고 있어도 관광수입을 위해 그대로 두고 있다 그대신 나무에 성장 억제제를 투여한다고 한다.
나무 가지와 뿌리가 마치 예술작품이 되어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헐리우드 영화 톰레이더에서 여주인공 안제리나 줄리가 튀어 나온 장면을 찍은 장소라고 해서 사람들이 몰려 있다.
그 영화를 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영화배우 안젤리나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두가 알까 궁금했다. 광고의 효과가 빛나는 모습이기도 하다.
톰레이더 3편 모두를 보았는데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기묘한 주변 분위기가 많이 보이는 장면은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은 계속 이어졌다.
사원이 폐허가 되다보니 길도 미로처럼 얽혀있어 출입구를 못찾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고 하였다.
타프롬 사원이 대단히 인상적인 역사 유적지임에 틀림없다는 감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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