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막을 지나온 바람
바람도 길을 가다가 주막만 보이면 꼭 들린다.
나그네를 따라서 은근슬쩍 들렸다가 막걸리 한 잔 쭈욱 들이키고서야 떠난다.
그리곤 취해서 비틀거리며 동에서 불었다 서에서 불었다 빙빙 돌았다 한다.
주막 이름이 선술집인지 길손집인지 아니면 옥자네인지 아리아리하다.
참새 방앗간 인 것 같지만 바람은 참새가 아니라서 아닐 것이라고 우긴다.
사실 그 주막은 본래부터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바람이 지날 때 마다 항시 다른 이름을 멋대로 붙여 놓았다.
그리고선 없는 이름 기억나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회상하려 한다.
바람이 주막 추녀 끝에 적어 놓은 이름은 금방 지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바람은 안주 맛에 대해서도 회상하려 애쓴다.
매웠는지 짭짜름했는지 아니면 맹탕이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먹을 때 맛있게 먹었는데 왜 그렇게 맛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니 맛은 고사하고 멸친가 고춘가 안주 종류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어쩌면 안주는 물로 대신하고 손가락만 빤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막걸리까지 정말 막걸리였든가 의심을 해 보기도 한다.
동동주였나! 탁주였나! 아니면 숭늉에 소주를 탄 술인지도 모를 일이다.
바람은 술이 깨이는지 머리가 아팠다.
이제 그 곳에 정말 주막이 있었는지 막걸리를 먹었는지조차 의심한다.
주막은 있었는데 주모를 보자마자 취해버려 기억을 상실한 것 같다.
바람이 여우에 홀린 일은 없을 터이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만도 없다.
아무튼 바람은 주막만 지나오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주막은 바람이 조심해야 할 대상이니 늘 경계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그러다가도 바람은 또 어디 주막이 없나 두리번거리곤 한다.
참으로 못 말리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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