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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산에서 부는 바람

산에서 부는 바람

 

산위에서 부는 바람 고마운 바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흘린 땀을 씻어 주기 때문이라고 정감 있게 표현한다. 등산을 해 본 사람들은 산비탈을 타고 정상에 올랐을 때, 땀을 씻어주는 그야말로 그 시원한 바람의 맛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려 뺨을 따갑게 때려도, 땀을 씻던 수건이 벼랑으로 날아가도, 바람을 원망하지 않고 마냥 고맙게만 생각한다. 무술연마를 마친 협객이 하산을 앞두고 깊은 산중 높은 바위에 올라 칼을 찬 채 옷자락을 휘날리며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이야말로 산속의 바람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산에서 부는 바람은 지형에 따라 느끼는 정취가 다르다.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 사이의 바람은 있는 듯 없는 듯 감을 잡기가 어렵지만 능선을 감아 휘몰아치는 바람은 날아가는 꿩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하기도 하며 계곡을 타고 흐르는 바람은 잔잔한 물결을 연상시키게 한다. 산속의 바람은 계절마다 세기와 방향을 달리하기도 하지만 산봉우리와 바위와 절벽의 위치에 따라 뒤바뀌기도 한다. 산에서 사는 사람이 바람만으로 길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이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산에서 사는 나무와 풀과 동물들은 태생적으로 산바람과 친해지지 않을 수 없다. 산속의 생물들은 바람에 굳이 저항하려 하지 않는다. 바람과 맞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생명을 좌우하는 것이기 때문에 바람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바람이 생명을 위태롭게 하기도 하지만 땅과 공기 또는 햇볕이나 눈·비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지탱하는 요소로 활용하려 노력한다. 순응의 미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산바람이 무서운 것은 불과 만날 때이다. 산불이 일면 바람은 경고의 의미에서라도 불을 빠르게 확산시키며 산속의 모든 생물을 재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을 다른 쪽 산으로 또는 민가로 옮겨 주기도 하고 죽어가려는 불을 자꾸만 일으켜 세우기도 한다. 바람이 불을 보면 흥분하며 성을 내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는 점이다.

산에서 이는 바람은 수행의 바람이다. 생명의 기원에서부터 육신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다스리는 것이 바람이다. 산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산바람은 볼 수 없다. 산속의 바람은 없는 것 같지만 그 어느 누구라도 느낄 수 있기에 바람은 분명 있는 것이다. 산바람의 진실은 오래된 수행자만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그 길을 찾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자고로 수많은 구도자들이 산속에서 바람을 맞고 고행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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