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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흙돌담 골목길

 

 

흙돌담 골목길

 

                                      유유

 

바람도 살짜기 들어서는 정겹던 골목길

떡 돌리는 순이가

사뿐사뿐 걸어서 오는 듯한 착각이 맴도니

그리움만 울컥 치민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희망찬 새마을 노래가

이젠 머언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어 버린

어느 동네의 뒤안길

 

남아 있는 옛 마을의 흙돌담 골목길 걷노라면

담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

고개 빼고 담 너머 살펴보고 싶건만

개 짖는 소리에 조용히 지나친다.

 

 

 
 

우리나라의 옛 담장은 흙담, 돌담, 판장, 목책, 그리고 바자울이나 탱자나무 등을 심어 만들기도 한다. 쌓아서 만드는 경우는 기단부에 큰 돌로 자리를 잡고 막돌을 쌓아 만든 담장이 많으며 흙으로 판축(板築)하기도 한다. 흙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빗물에 무너지지 않도록 이엉을 얹거나 기와를 얹어 지붕을 만들었다.

 

 

흙으로 담을 만들면 토담이고 돌로 쌓으면 돌담이 되지만 돌과 흙을 같이 섞어 만들게 되면 흙돌담이 된다.

농촌에 사는 서민들은 주로 흙담을 만들고 비로 인해 무너지지 않게 그 위에 짚으로 만든 이엉을 덮었지만

산촌의 농막은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거나 주로 돌로 담을 쌓고 맨 위는 그대로 두었다. 

 

 

그렇지만 양반들이 사는 집이나 대궐 등지는 대부분 흙과 돌을 같이 섞어서 흙돌담을 쌓았고 그 위는 기와 지붕으로 덮었다. 

 

 

그래서 기와지붕인 흙돌담은 비교적 견고하다 보니 담장엔 덩굴식물이 자라서 완전 덮어 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흙돌담의 골목길을 가다 보면 한쪽 담장은 담쟁이 등으로 완전 덮어 버린 반면 반대쪽 담장은 그대로인 상태를 만나게 되면 묘한 느낌을 받게 된다.

 

 

흙돌담 안의 양반 주택은 정원에 감나무나 소나무를 많이 심었기에 담장 밖으로 가지가 뻗어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능소화의 전설도 생겼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름 꽃이 가을까지 이어짐)

 

능소화의 전설

왕이 사는 궁궐에 아리따운 '소화'라는 궁녀가 있었다. 소화는 어느 날 임금님의 눈에 띄어 하룻밤의 성은을 입으면서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궁궐 한 곳에 처소도 마련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임금님은 그 후 소화의 처소를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여우 같은 여러 빈들이 시기와 계략으로 임금님의 발길을 차단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소화는 임금님이 찾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냈다.

혹시나 임금님이 자기 처소에 가까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지나 않을까, 임금님의 발걸음 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내야 했다. 소화는 그렇게 지내면서 끝내 임금님을 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가, 어느 여름날 결국 눈을 감게 되었다. 소화는 눈을 감으며 시녀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저를 처소 담장 아래에 묻어주세요. 죽어서라도 임금님을 기다리겠습니다."

그렇게 담장 밑에 묻힌 소화는 이듬해 여름, 아름다운 꽃으로 환생했다. 그 꽃이 더위가 시작되는 여름날, 덩굴을 뻗어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밀며 임을 기다리는 듯한 꽃을 피웠기에  '능소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담장의 기와 지붕을 넘어 온 능소화가 가장 유명한 곳은 대구 남평문씨본리세거지라고 하며 능소화가 활짝 피는 여름철이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다고 한다. 

(능소화가 유명한 곳은 진안 마이산 탑사 옆 암마이봉에 붙은 능소화와 대구 대봉동의 능소화 폭포 그리고 구례 화엄사의 능소화도 있지만 담장을 넘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다 보아야 하는 그런 소화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가을엔 담장을 넘나드는 감나무의 익어가는 감이 멋과 운치가 있지만 석류도 한 몫을 하게 된다. 

 

 

이렇게 흙돌담의 골목길이 멋진 곳은 경남 산청에 있는  [남사예담촌] 모습이다.

 

 

남사예담촌은 경남 산청군 단성면 남사리에 있는 한옥마을로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어 표면적으로는 옛 담장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내면적으로는 담장 너머의 그 옛날 선비들의 기상과 예절을 살펴 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남사리는 과거 냇물을 사이에 두고 갈라진 진주의 사월리와 단성의 사월리가 합쳐지고 산청군으로 통합되면서 남사리가 되었다고 하는데 수많은 선비들이 태어나 서당에서 공부를 하여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전통마을로 이어져 오게 되었는데 마을의 역사는 500년에 달한다고 한다.

 



남사예담촌에는 본래 250여채에 달하는 고택들이 있었지만 6.25전쟁 당시 옛 집 여러 곳이 소실되어 현재 40여채만 남아 있다고 한다. 

 

 

문화재청은 고가, 감나무, 담쟁이 넝쿨과 어우러진 옛 ‘돌담길’이 문화재로 등록,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추억의 명소로 되살아나게 할 수 있도록  2006년부터 등록문화재로 지정해오고 있다.

 

문화재청이 2007년 11월 30일 현재 고성 학동마을 옛 담장 등 모두 18건의 마을 돌담길을 문화재로 등록하였는데  농촌 전통테마마을, 체험휴양마을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마을 제1호가 바로 남사예담촌이라고도 한다.

 

 

사효재로 불리는 고가가 있는데 1706년 아버지를 해치려는 화적의 칼을 자신의 몸으로 막아낸 영모당 이윤현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라고 한다.

 

 

이 사효재 앞에 큰 향나무가 한 그루 살아 있는데 동네 주민들이 사효재를 짓기 전에 향나무를 심은 다음 제례를 올릴 때 향을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있다 .

 

 

남사예담촌에서 가장 대표적인 전통한옥은 [이씨고가]라고 하였다.

 

 

이씨 고택은 문화재로 지정되었고 남사예담촌의 한옥들이 대부분 문을 닫아 놓아 외부인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데 비해 완전 개방되어 있다. 

 

 

 대문에서 본채까지 이어지는 댓돌도 운치가 있는 집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씨고가로 들어가는 흙돌담 골목길이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부부회화나무 때문이다

 

 

 

늘 그렇듯 아무리 멋진 곳도 알려지기가 쉽지 않지만 특정 장소가 유명하게 되는 것은 바로 드라마 때문이다

 

 

여기 남사예담촌의 이씨고택에 들어 가는 부부 회화나무 아래에서 드라마가 촬영되었기에 젊은이들도 따라 하기가 되어 인기가 있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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