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없는 석등
유유
야밤삼경에 절을 찾는 나그네 있으면
석등에 불을 밝혀주련만
심산유곡엔 길 잃은 영혼 천지라
너무 밝으면 교통대란이 우려된다고 하여
형상만 있어라
석등은 진리를 밝히는 지혜의 상징이면 그만
불빛은 저마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으니
굳이 불을 켜 놓으랴마는
봄엔 매화꽃이
여름엔 반딧불이가
가을엔 단풍의 오색 빛이
겨울엔 하얀 눈송이가
서로 불빛이 되어 사바세계의 어둠을 지워주리
그래도
그래도 사찰엔 석등의 불빛이 꼭 필요하다면
해우소에 야명주나 갖다 놓으렴.
<한라산 아흔아홉골 입구의 천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