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라는 책자 때문에 라다크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인도 배낭여행을 떠나 고생 좀 했었다.
라다크왕국은 866년 티베트의 붕괴로 그 일부가 히말라야 서남쪽 고원지대에 설립하여 1,000년 정도 나라 형태를 유지하다가 1834년 이슬람 무굴제국에 의해 멸망되었는데 인도의 독립 이후에도 인도 소속으로 되어 있지만 인종도 티벳인이며 종교도 불교를 유지하고 있어 인도와는 전혀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라다크 지방은 해발 평균 3,900m의 고원지대로 척박한 환경을 갖고 있지만 전통을 지키며 사는 티벳인들로 인해 세상의 관심을 받았지만 점차 현대화되면서 지금은 옛날의 모습을 많이 상실하였고 잠무카슈미르에 속해 인도의 흰두교와 이슬람교의 틈바귀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도 북부 여행을 마치고 잠무카슈미르주에 속하는 라다카의 레로 가는 길을 야간 버스로 마날리와 사추를 거치게 되는데
인도인의 여름 휴양지인 마날리까지 가는 길은 단순히 길기만 했지만 사추가는 길은 라다크 지방에 속함에 따라 고산병이 문제가 되었다.
마날리에서 부터는 계속 오르막길이 지속된다.
휴게소까지 구름이 내려오는 모습이 고원지대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라다크로 가는 첫 번째 고개인 로탕패스(3,980m)의 표지판 밑에 왠 나그네가 앉아 있다.
한여름철에 두터운 옷차림을 하고 지쳐 보이는 자세와 표정인데
설마 걸어서 이 고개를 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래본다.
저 아래 보이는 차량 두 대가 우리 일행이 타고 다닌 승합차와 지프차로 그리 편하지 않은 차지만 인도에서는 그래도 고급에 속했다.
앞에 있는 강인한 여성이 길잡이라고 불렀다.
드디어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녁 무렵이 되어 사추의 텐트촌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었다.
여기서부터 드디어 고산병 증상이 오기 시작하여 어지러움과 감기 기운으로 인해 고생을 했으며 밤새 추위와 사투하며 하루밤을 보냈다.
마모트가 묘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라다크의 수도인 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남걀사원이다.
남걀사원에서 내려댜 본 레의 전경
전체가 분지 형태로 되어 있으며 주변의 황량함과 달리 중앙부에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푸른색을 유지하고 있다.
레의 중심부인데 오른쪽 하단의 조금 높은 집이 옛날 라다크 왕궁이었다고 한다.
왕궁치고는 소박하면서도 볼품이 없다.
남걀사원 내부 모습
티벳 불교의 기본 형식을 볼 수 있다.
라다크 왕궁 입구
왕궁의 형태 단면도
라다크 주민들의 주식
옛날에는 보리와 밀로 만든 주먹밥인 은감폐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화덕에서 구워 낸 라다크브래드라고 한다.
곰파라 불리는 사원과 판공초 호수 리고 루브라 밸리 등 이런저런 관광을 마치고 레를 떠나는 곳에서 본 강물
히말라야의 눈녹은 물로 추정되지만 사암지대를 흐르는 물이라서 탁하다.
길을 가다가 작은 마을에서 마실 물을 사기도 하였다.
그곳엔 살구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고
살구를 값싸게 팔기도 하였다.
중간에 오래된 곰파에 들려 숨고르기를 겸하게 되었다.
인도는 흰두교, 불교, 이슬람교 할 것 없이 모두 신발을 벗게 만든다.
곁에는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입구에서 판매되고 있는 기념품
조금 더 가니 " 문 랜드"라고 불리는 황량한 산악지형이 보였다.
아마 달 표면의 영화를 촬영한 곳인 모양이다.
건너편에는 위험하게 지은 건물이 아슬아슬하게 서있다.
화성을 주제로 한 영화 마르도 촬영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라다크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라마유르 곰파가 나타났다.
이 삭막하고도 험한 곳에 어떻게 이러한 사원을 만들어 놓았는지는 종교의 힘 때문일 것이다.
이 라마유르 사원이 티벳 불교의 라다크 한계점이 될 것 같았다.
이런 모습의 승려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다가 달라이라마가 사는 다람샬라에서 다시 나타난다.
라다크 지역에서 본 가장 신기한 장면
그야말로 오아시스의 대명사라 할 수 있었는데 가보고 싶었지만 차창 너머의 감상으로 만족해야 했다.
중간에 특이한 바위가 나타났다.
무슨 불상이 있어 이슬람 권역에 불교가 있나 했더니만
2,000여년 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파된 내세불을 믿는 불교 종파라고 했다.
아직은 위세를 보이는 고산지대
라다크의 2번 째 도시 까르길이 나타났다.
교통 중심지에 형성된 상업도시로 옛날 라다크의 핵심이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이슬람교도들이 도시를 장악하여 불교도는 극히 적다고 했다.
인도의 가장 북쪽에 자리잡은 도시이면서 전쟁도 있었고 걸핏하면 종교 분쟁이 야기되는 곳이라서 여행자 주의 지역이 되었다.
까르길에서 하루 숙박하고 스리나가르로 가는 길 초반에 만난 전쟁기념관이다.
순직 군인의 무덤이 있는 뒤 저 멀리 있는 봉우리가 타이거 능선으로 전투가 심했던 곳이라 한다.
전쟁은 사실 파키스탄과 인도가 전면전으로 붙은 것이 아니라 파키스탄에서 까르길의 이슬람 민병대에게 무기를 주고 독립활동을 하도록 유도하여 발생한 내전 형태로
반란군 진압 수준이었던 모양이다.
전쟁기념관 앞을 지나치는 이슬람 학교 학생들의 모습에서 아직 종교전쟁은 계속되고 있음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까르길에서 스리나가르로 가는 길은 험하고도 길었다.
물가에 풀도 자라고 양떼도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멀은 것 같다.
여전히 설산은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험한 곳에 길을 많이 내어 놓았지만 그래도 단단한 바위산이거나 나무가 우거져서 그대도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여기는 잘 무너져 내리는 모래산이고 나무도 전혀 없어 위험한 느낌은 훨씬 피부로 다가온다.
주변을 바라다보면 오싹오싹하는 소름이 돋는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이젠 산에 큰 나무도 보인다.
고산지대가 끝난 모양이다.
제법 동네 다운 동네도 보이고 꽃도 피어 있다.
주변에 꽃 탐사도 해 보았다.
이름은 굳이 알려 하지 않는다.
그냥 특별한 꽃으로만 받아주면 된다.
인터내셔널 히말라얀 캠프, 호텔과 레스트랑
기가막히게 너무 화려한 모습이다.
파키스탄 국기가 걸려있다.
이러니 길 중간중간 검문이 심한 모양이다.
험한 고개길 여러 번 넘어 드디어 잠무 카슈미르의 중심지이자 가장 큰 도시인 주도 스리나가르에 도착했다.
달 호수에 있는 보트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숙소 앞에는 연밭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슬람 구역이지만 부처꽃도 피어 있다.
스리나가르는 잠무카슈미르의 주도이면서 가장 큰 도시지만
달 호수(문 레이크 아닌 Dall Lake)로 인해 물 위에 많는 집과 호텔이 있어 관광중심지는 호수로 되어 있었다.
첫 날은 수상 교통수단인 시카라라고 불리는 작은 배를 타고 가까운 곳을 한 바퀴 돌면서 상점과 수상시장의 풍물을 감상했다.
둘 째날에는 건너편의 공원으로 가기 위해 시카라를 대절해서 멀리 출발하였다.
호수 중앙에는 수련이 많이 피어 있었다.
멋진 경치가 나오는 저 섬까지 갔었는데
거기에서 새로운 뉴스를 접했다..
오늘은 이슬람에서 인도 정부의 스리나가르 통제를 풀어달라는 차원의 데모를 하는 날이라서
관광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관광지 문도 닫았고 건너편 상륙 후 이용할 택시도 없고 오토릭샤도 없을 뿐만 아니라 뱃사공에게 영업 한다고 돌을 던진다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숙소로 되돌아 가게 되었다.
뱃사공이야 좋겠지만 우린 하루를 망쳤다.
종교 분쟁의 현실을 눈 앞에서 직면했고 다음 날에도 정상적으로 출발을 못해서 새벽 3시에 떠나야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연잎을 채취하고 있는데 배가 안 가라앉는 것이 신기하다.
연 이파리를 어디에 사용하는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스리나가르에서 새벽 3시에 출발하여 검문소에서 잠시 정지당하는 등 이리저리 고생을 하다가 잠무카슈미르의 마지막 여정지인 다람샬라에 도착했다.
다람샬라라고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다람샬라에서 더 산 위로 올라간 매크로드 간즈(맥간)라고 하는 곳이다.
인도가 달라이라마의 티벳 망명정부 설치를 허용한 곳인데
도착하자마자 비가 왔고
그래도 폭포부터 시작하여 관광을 강행할 수 밖에 없었다.
관광 명소엔 성 존이라는 교회도 있었다.
흰두교 국가에,
주변엔 이슬람교도들이 사는 권역에
티벳 망명정부가 들어서 온통 불교인들이 왕래하는 곳에
교회가 있었다.
신발 벗고 들어가라고 쓰여 있는 팻말 옆에 누렁이가 앉아 졸고 있다.
근무 태만
이 교회 좌우 주변엔
순교자의 묘지만 가득 차 있었다.
해가 진다는 명소에 가보았지만 흐린 날씨로 별볼일 없었다.
마지막으로 가는 곳
달라이라마가 설법하는 절과 같은 곳
남걀사원이다.
TV에 늘 나오는 달라이라마 14세가 앉아 설법하는 단상 의자에는 천으로 덮여 보호하고 있다.
밖에는 많은 승려나 신도들이 앉아 불공을 드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달라이라마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레에서 설법하는 광경을 보았으니 조금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법당 밖에서 마니차를 돌리는 스님
공양을 할 수 있도록 보시하고 있다.
인도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인도식의 밥을 손으로 먹어 보았다.
법당의 우산이 묘한 느낌을 준다.
주변에 피어 있는 시계꽃은 모양이 같았지만
시간의 흐름은 분명히 달랐다.
<2부 끝>
'문학 > 기행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꽝시폭포의 운치 (0) | 2019.01.21 |
---|---|
태국 아유타야왕조의 흔적 (0) | 2018.11.16 |
오래된 미래, 라다크의 꽃 (1) | 2018.08.11 |
천산 쏭쿨호수의 일출 (0) | 2017.07.08 |
키르키즈스탄의 꽃동산 (0) | 2017.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