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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문

제주평화포럼 연수-제2일 면산 및 세미나

[공중도시 면산 관광]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한다.

특히 중국 음식은 색과 모양이 맛에 한 몫을 하게 되는데 배열도 잘 해야 더욱 입맛을 당기게 된다.



둘째 날 면산 관광이 계획되어 있는 날인데 구름이 많이 끼어 시야를 흐리게 한다.

뜨거운 여름철 뙤약볕에서 산길을 다니는 고역을 면하게 하고 시원한 산책이 되도록 하늘이 도와주는 것은 무척이나 감사하지만

사진 찍는 사람은 영 아니다.


 

신비의 공중도시로 호칭되는 면산은 아래로 부터 위로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도교사원인 대라궁, 해발 2,200m의 절벽에 세워진 운봉사, 12명 고승의 등신불이 봉안되어 있는 정과사, 그리고 면산의 주인공 개자추를 모시는 개공사당이 세워져 있다.


  

밑에서 부터 오르면 힘이 든다면서 역순으로 위에서부터 내려오며 관람하기 위해 버스로 개공사당까지 올라간다.

수직 절벽에 잔교를 설치하고 도로를 만들어 놓았기에 차창 밖을 내려다 보면 오금이 저리는 상태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날씨가 흐려서 아래쪽을 선명하게 볼 수가 없었다.



산 위로 오르면서 여러 시설물들을 보았는데 일부는 숙박업소로 이용하고

상당수는 방치되어 있었다.



면산 정상에 가까운, 길 마지막에 있는 정자인데 개공사당을 위한 하나의 장식품 용도로 보인다.



면산의 주인공은 개자추이다.



介子推(jiè zǐ tūi)는 춘추전국시대 진()나라의 현신()으로, 진나라 문공()이 망명 생활 할 때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내서 문공의 허기를 면하게 할 정도로 충정을 다 바친 인물이다. 그 후 논공행상에서 제외되자 이곳 면산에 은거하며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문공이 뒤늦게 후회하며 중용하고져 그를 불렀으나 응하지 않자 산에 불을 놓으면 개자추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올 것으로 판단하여 산불을 놓았지만 하산하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그를 기리기 위해 한식()이 생겨났는바 중국은 조상숭배 차원에서 청명과 한식을 중시함에 따라 개자추의 지위도 높아졌다.



절벽을 깎아 동굴을 판 후 그 속에 개자추 및 그의 어머니 조각상을 모시고 앞은 건축물 형태로 장식해 놓았다.

전시 공간에 개자추의 일대기를 엮은 글과 부조가 있었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담아오지는 못했다.  



개공사당에서 정과사로 이동하는 구간은 두 가지인데 걸어서 가는 방법과 버스 타고 내려가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고령자와 무릎이 다소 불편한 사람은 버스를 타고 다른 사람은 산책을 겸해 걸어서 내려가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산책길 좌우에 꽃도 피어 있고 바닥도 돌로 잘 만들어져 있어 편안한 코스 같았다.

(사진 속의 꽃은 꿩의다리와 싸리꽃)



중간 중간 갑옷을 입은 십이지신상도 세워 놓았다.



그런데 운무가 자욱한 계곡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좀 이상하였다.



이것 때문이었다.

계곡은 그냥 평범한 계곡이 아니었고 험난한 발길을 만들기에 충분한 모습이 나타났다.

좁은 계곡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바위 비탈 좌우에 계단 아닌 철판을 만들 놓았으며 그리고 친절하게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말라고 녹물이 붉게 배여나오는 체인 줄을 걸쳐 놓았다.



비도 왔고 안개도 끼어 있어 발을 딛는 철판이 매우 미끄럽다.



기가막힐 노릇이지만 돌아가는 방법은 없으니 계속 가야만 한다.



올라오는 쪽으로 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발걸음을 옮기도록 도와 주는 모습이 보였다.



신기하다며 모두 돌아다본다.

아가야~  넌 일찍부터 험난한 인생 시작되었구나!



힘들어도 사진은 찍고 가야 한다.

사진 찍을 때는 하나도 안 무서운 표정으로 V자 손동작 같은 여유를 부려야 한다.



계곡 중간 중간에는 크고 작은 웅덩이들이 있었는데 한 곳은 '중국의 뻥'이 그대로 감겨 있는 멋진 이름이 붙어 있다.

마음을 맑게 하는 물이 담겨 있다는 청심지가 그것이다. 



철판 걸음마가 어느 정도 숙달되어 가니 뒤돌아 보며 동료를 챙기는 여유까지 생겨난다.  

~ 모두 조심하세요! 낙오된 분 없겠지요 ~



청심지 물은 쇠사슬 녹물이 흘러 들어가 깨끗할 리 없고

주변 바위도 매끄럽기 때문에  절대로 떨어지면 안된다고 하는 것 같다.



갑자기 오르는 편과 내려가는 편 모두 정체 현상을 보인다.

이런 곳이 몇 군데 있었는데 여기도 앞에 무언가 이상이 있나 보다.



경사도가 높고 어떤 구간은 오르는 곳과 내려가는 곳이 합쳐져 있어 많이 밀리게 된다.

잠시 쉬어 가라고 받아들이면 편한 마음이 들 것이다.



여기가 위험한 구간이다.

나무 계단이 구름다리 형태로 설치되어 있으니 중심 잡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다가 이렇게 엉키게 되면 곤란하다.

원수의 외나무다리는 아니지만 불편한 것은 서로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풀어 나간다.



황야인이라는 신선이 살았다는 표식이다.

신선이 있으면 기사회생하는 단약도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은 복도 많은 모양이다. 신선도 보고 단약도 얻어먹어 살아날 수 있었으니. 모두 다 개자추의 은덕이란다!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그 많던 사람 또 우리 동료들 다 어디 가고 이리도 깊은 계곡에 나 혼자 남았단 말인가!!



여기는 기인들이 목욕하는 곳이라 하니

혼자 조용히 목욕하고 가란 말인가?



그런데 절벽에 볼견자가 쓰여 있으니 요조숙녀 체면에 어찌 신선에게 알몸을 보일 수 있나. 그냥 가야지.



계곡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다리도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계곡이 밝아지고 저 아래로 물건을 파는 것 같은 좌판이 보였다.

계곡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다.



이제 다왔다고 하면서도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개자추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서현곡, 그 엣날 현인들은 모두다 경공술을 익혔던 모양이다.

군대 생활 할 때 받은 유격훈련보다 심했다는 평가도 오가는 가운데 비록 힘 빠져 축 쳐진 모습일지라도 기념촬영은 해야 한다.  



다음 코스는 정과사가 되었다.

정과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구름 속의 절 모양 벽화를 배경으로 흔적을 남겨보는데

이런저런 사유로 선명하지가 못하다.



정과사로 올라 가는 계단인데

정과사도 절벽을 깎아 굴을 만들고 그 안에 절을 조성해 놓았다.



정과사라고 하지 않고 정과전으로 표기되어 있다.

등신불 8명의 고승은 천년이 지났어도 근골이 끊어지지 않고 영기가 흩어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실제 손톱 모양과 겉을 바른 흙 속에서 법복이 보였다.

이집트의 미이라가 시신 보존의 기술이라면 이곳 포골진신은 기로 이루어진 사리라 할 수 있다.



안개가 조금 걷히니 옆에 건설해 놓은 탑 모습이 선명해진다.

올라가보고 싶었지만 가이드 주몽은 돈 달라는 곳이라고 막아 그러지 못했다.



고승의 공덕에 대한 안내판을 보면서 정과사를 떠난다.



등신불 정면에 차마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기에 정과전의 추녀 끝과 안개 자욱한 절벽만을 담아 왔다.  



안개가 더욱 심해져 가는 가운데 운봉사로 향한다.



운봉사로 내려 가는 길은 계단이 조금 있지만 서현곡 보다는 훨씬 편안하다고 했다.

가는 길 옆에 며느리밥풀꽃이 무더기로 피어있다.



으잉! 그런데 이건 뭐냐

뭐 이런데가 있다냐~ 쳐다 보기도 겁난다.



엄청난 높이가 비교되는 지점이다.

고운 손이 어디있나, 녹슨 철사가 되었던 쇠사슬이 되었던 무조건 꽉 잡고 싶어진다.



대단한 공사를 하였다.

별다른 장비 없이 맨손으로 절벽에 구멍을 내고 철근과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길을 내었으니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밑에서 올려다 보면 잔교 건설 공사한 공정을 유추해 낼 수 있다.

이 곳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다.



면산을 공중도시라고 부르게 된 것이 내려다보이는 운봉사풍경구라 했다.

이제 거의 면산 관광이 끝나가는 시점이다.



운봉사는 원래 이름은 포복사(抱腹寺)로 면산 절벽에 커다란 암동인 포복암(抱腹岩)에 위치 하고 있는데 높이 60m, 폭 180m, 깊이 50m나 되는 큰 동굴의 좌우로 뻗은 커다란 절벽이 배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당나라때 기록에의하면 이 절은 북위 때 처음 지어진 이후로 약17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본래의 절은 대부분 불에 탓고 일부만 남았던 것을 면산 개발로

복원된 것이라 한다.



미륵불전을 비롯해 다양한 법당이 지어졌는데 건축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의도적으로 오래된 절처럼 고태가 나도록 했다고 한다.



공부하는 스님이 있었다.



그 방 앞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 후크시아가 스님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아래는 줄에 대단 리본이고 절벽에 걸린 것은 동종이다.

모두 소원을 빌기 위해 매단 것인데 종을 걸려면 200만원 정도의 거금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무슨 대단한 소원이 저리도 많을까?



운봉사 아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리는 옆 호텔 건물로 가서 점심을 하고 엘리베이터로 내려갔다.



면산 공중도시의 상징물 같이 보이는 운봉야원이다.

호텔이지만 투숙객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면산 관광을 마치고 대라궁은 생략한 채 우리 일행은 숙소가 있는 장치로 향했다.



이동 중간에 휴게소에 들렸는데 술 판매점 앞에 홍보물로 전시해 놓은 술독 인형이 아기자기했다.




[제51차 제주평화통일포럼 해외 세미나] 2016.8.6 중국 진웨이그랜드호텔



면산의 개자추가 살았다는 서현곡에서 보낸 시간이 길었던 관계로 장치의 숙소에 도착한 것은 예정시간 보다 조금 늦었다고 한다.

이번 여행 일정의 핵심인 세미나가 개최되는 곳이라서 그런지 환영부터 다르다.

금위호텔(찐웨이따쥬띠엔) 정문에 들어서자 환영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신속하게 여장을 풀고 행사장에 집결하였다.

서비스하는 호텔 종업원들이 오가며 자리 정리를 도와 준다.



포럼 연구간사가 진행을 맡아 제51차 제주평화통일포럼 해외 세미나가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연구위원장이 나와서 금번 세미나 주제가 "최근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반도 통일"로 되어 있는데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미묘한 시점이고 중국측이 이 행사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일 우려도 있다면서 오늘은 원론적인 부분만 다루고

심층적인 부분은 귀국 후 별도의 시간을 마련하여 논의키로 했다는 뜻을 전달하였다.



 제주평화통일포럼 대표가 불참하게 됨에 따라 제주시협의회장이 대표역을 맡아서 오늘 행사에 보람있는 시간이 되어달라고 당부하였다.

 


제1세션이 시작되었다.



발제자가 <미중관계의 변화와 한국의 대응>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이어서 제2세션으로 진행되었다.



발제자가 "남중국해 미중 갈등과 이어도" 제하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세미나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함으로써 제2일차 여정을 모두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