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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문

제주평화통일포럼 중국 세미나 - 제1일 석가장


제주평화통일포럼에서는 "2016 해외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제51차 해외연수를 2016.8.6 중국의 산서성 장치 소재 진웨이그랜드호텔에서 실시하였는데

참석자 고관용 제주평화통일포럼 연구위원장(한라대 교수, 아래 줄 중앙) 등 33명 중의 한 명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평화포럼 중국 연수는 공중도시 면산과 태항산의 팔천협 관광을 겸해 실시되었는바

면산과 태항산 관광은 보통 북경을 경유해 접근 하게 되지만 인근의 석가장(하북성 성도)에서 제주로 기항하는 중국의 춘추항공이 있어 이를 이용하였다.


2016.8.5 석가장에 도착하여 맛보기로 들른 곳은 조자룡의 고향을 기리는 [조운묘]였다.



삼국지를 읽을 때마다 "진정한 영웅"이라고 감탄하게 되는 조운은 자를 자룡이라 하고 호를 상산이라 해서 상산 조자룡으로 불리었는데

상산이란 호는 그의 고향이 상산 진정현임에 따라 붙게 되었는바 석가장이 하북성 성도임에 따라 석가장에 조운묘(조자룡의 묘지는 사천성에 있고 조운묘는 사당)를 설립한 것은 관광상품을 위해 이웃 진정현 출신을 차용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사당이란 곳은 늘 그렇듯이 별로 볼 것이 없다.

동상이나 그림 같은 것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큰 향로에 향이 꼽혀져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은 대동소이하다.

이 곳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향나무 토피어리를 조성해 놓고 장군인지 병사인지를 상징케 하여 병장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출해 놓은 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자룡의 헌 칼 쓰듯 한다"는 용어는 조자룡이 칼을 잘 다루었음을 상기시키는데

관우의 청룡언월도나 장비의 장팔사모 같은 무기들이 모형물 곁에 비치되어 있다.



조운묘에 이어 다음에 들린 곳은 중국 북방지역 최대 규모의 불교 사찰이라고 하는 융흥사이다.  



융흥사는 수나라 때 용장사였다가 청대에 이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송대에 만들어진 높이 22m의 대비보살이 대표적 불상으로 모두 동으로 만들어 졌으며

수에서 청대에 이르기까지의 비각 30여점이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출발일 당일은 석가장을 경유해 평요고성에서 1박을 하는 여정이었다.

석가장에서 태원이라는 도시까지는 시간 절약을 위해 고속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중국은 땅이 넓은 관계로 철도 교통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날이 갈수록 철도망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였다.

가장 빠르다는 고철에 이어 다음 고속도의 똥차가 여러 지역을 연결하고 있어 예전의 느린 쾌속열차 등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았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평요고성은 기원전에서 시작되어 2,5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지금의 모습은 명청대에 북방 수비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도시라 한다.

 (어두어질 무렵 도착했기 때문에 사진은 다음날 아침 광경)



덕거원객잔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 곳은 숙소가 아니고 저녁을 먹기위해 들어갔다.



식단은 간결하고도 갖출 것은 다 갖춘 형태였다.

물론 향채는 다 빠져 있어 한국인이 먹기 편하게 만들어 놓았다.



식사 후 현지 가이드가 숙소로 가는 자유시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지 가이드 주용운은 자신을 조선족으로 부르지 말고 교포 3세로 대해주길 바란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 팀 일행의 단체 명칭을 주몽이라고 명명하였다.

그의 고향이 주몽의 탄생지인 졸본성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주몽이 고씨가 아닌 주씨이길 바라는지 모르지만 주몽이란 이름을 좋아했다.



관광지에 밤이 오면 활기가 넘쳐난다.

밤거리를 누비기전 미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별로 대단한 것은 없어도 골목길에 사람들로 꽉 차 있다.



상점들로 이루어진 골목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이 곳이 숙소였다.



짐들은 이미 도착되어 있었고

홍선역객잔이라고 불리는, 껍질은 옛것이고 속은 현대식인 이 곳에서 방 열쇠를 받고 1일차 여정을 마치게 되었다.



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일부는 밤거리를 방황하러 나가고 일부는 중정식 정원에서 쉬기도 하는 자유스런 분위기 속에 하루가 마무리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