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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스크랩] 쇠소깍의 동양화 유감

쇠소깍의 동양화 유감/유유

 

아마 1998년 가을 쯤 되는 것 같다. 어느 한 지인이 제주도에 전통적인 동양화 모델이 있으니 가보자고 하여 따라가 보았다. 전통적인 동양화라면 멀리 구름 위에 펼쳐지는 은은한 산과 잔잔한 호수 또는 강 그리고 그 위에 떠 있는 배와 낚시하는 노인 정도를 떠올리며 제주도는 호수나 강이 없으니 그런 경치가 나오는 곳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현장에 도착해 보니 전혀 뜻밖의 비경과 만나게 되었다. 지금은 카메라를 메고 오름에서 야생화를 찾고 바닷가의 이색 풍경을 만나기 위해 방황하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사진을 찍지 않았고 동양화는 더욱 그리지 않았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쇠소깍의 맑고 푸른 물과 조화로운 모습을 보자마자 그만 순간적으로 사진이나 그림이 필요하다는 영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쇠소깍이라는 이질적인 용어는 발음하기도 어렵다. 쇠소깍은 서귀포시 하효동과 남원읍 하례리 사이를 흐르는 효돈천 하류에 위치하고 바다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효돈을 쉐돈이라 했는데 쉐는 소의 제주도 사투리로서 쇠소란 소가 있는 연못 또는 소가 누워있거나 아니면 소가 빠져죽은 연못을 지칭하며 각이란 끝을 뜻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쇠소깍을 찾아가기가 어려웠다. 일주도로를 지나다가 효돈이란 동네에서 무조건 바닷가로 이리저리 가다보니 겨우 도달할 수 있었다. 길도 좁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있는 어촌 인근 이었다.

 

이곳의 지형은 이름만큼이나 특이했다. 일반적으로 마주치는 제주도의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한 폭의 동양화라는 표현이 무척이나 어울렸는데 멋진 풍광이 아주 평범한 곳에 숨어 있을 줄이야 어찌 알았겠는가. 처음 눈에 들어 온 것은 강의 하구였다. 어찌 보면 작은 호수를 닮기도 하고 큰 냇물이 넓은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모습으로도 연상되었다. 다음으로 조화를 이룬 것은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축소한 것 같은 협곡이었다. 높은 절벽의 바위가 저 마다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으며 절벽 위에 자란 나무들과 어우러져 호수에 그대로 비친 경치가 일품이었다. 뿐만 아니라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구름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한라산이 실루엣처럼 자리 잡고 앉아 있었으며 때가 가을인지라 길게 이어지는 돌담과 그 안의 감귤은 노랗게 익어가고 있어 균형 잡힌 그림을 만들어 냈다. 조각배와 낚시하는 노인만 있으면 완벽한 동양화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쇠소깍에 취해 있다가 눈을 동쪽으로 돌려 바닷가로 내려가 보았다. 바닷가에 그리 크지 않은 바위에 사람이 통과할 만한 구멍이 뚫려 있어서 그 구멍 속으로 다시 쇠소깍의 모습과 한라산을 바라보니 역시 멋진 그림이 나왔다. 반대로 산 쪽에서 바다를 조망하니 이 또한 일품이라 아니 할 수 없었다.

 

 

 

쇠소깍의 동쪽에는 예촌망이라는 작은 오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본래 여우마을의 이름을 따서 호촌오름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하는데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어 망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호촌도 듣기 거북해 예촌으로 바꾸었다는 말도 있다. 예촌망은 동서 두 봉우리로 이루어진 원추형 화산체인데 동쪽을 큰망, 서쪽을 족은망이라고 부르며 북동쪽의 자배봉수, 서쪽의 삼매봉수와 연결되는 통신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예촌망의 산정부는 넓고 평평한 구릉이고 큰망과 족은망 구간은 바다로 떨어지는 그윽한 단애로써 절경을 보여주었다. 멀리서 볼 때 배 같이 생긴 지귀도를 배경으로 바다와 해안 절벽이 어우러지는 경치는 또 다른 동양화 한 폭을 만들어 냈다.

 

 

 

아무리 멋진 그림이라도 세월이 흐르면 색이 바래지고 종이도 낡거나 찢어지곤 한다. 쇠소깍도 어찌 옛날의 풍광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2000년도에 들어 와 어느 한 동네 아저씨가 쇠소깍에 제주도 옛날 배를 재현한 테우를 뛰웠다. 동양화를 완성시키려 조각배를 띠운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테우도 알려 줄 겸 멋진 경치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용돈을 마련하자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고 이름도 생소한 탓에 그리 큰 호응을 얻지 못해 특별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사전 예약을 하고 테우를 타야 하는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올레길이 설치되면서 서서히 바뀌기 시작하였다. 쇠소깍은 올레 5코스가 끝나는 지점인 동시에 6코스가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올레꾼들이 이곳을 지나가게 되고 식당과 기념품 판매점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더욱이 쇠소깍 수상레저란 업체에서 2009.9부터 물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투명 카약 탑승 사업을 시작해 관광객들이 모여 들고 전통 목선인 테우도 마을 청년회에서 운영해 활기를 띠고 있다. 지자체는 계곡 옆에 난간을 만들고 도로를 넓히고 포장을 해 주니 마을에서도 쇠소깍 검은 모래 축제를 개최하는 등 관광객 불러 모으기에 전력을 투구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쇠소깍 경치에 감탄한다고 한다. 푸른 빛깔이 유난히 강한 물속을 들여다보며 숭어랑 졸복의 노는 모습도 보고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인 절벽과 중간 중간에 들어 선 우거진 숲 등은 신선이 사는 곳을 착각하게 할지도 모른다.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 가야만이 볼 수 있는 큰바위얼굴, 키스 바위, 독수리나 쌍사자 바위 등은 이곳의 자랑이 되었다.

 

그러나 동양화는 사라졌다. 은은하고 고즈넉한 동양화를 더 이상 그리워해서는 안 되겠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쇠소깍 주변에는 차량이 엉키어 있고 각종 상가와 관광객의 왕래와 더불어 쇠소깍 호수를 오가는 수많은 카약과 줄을 매단 테우의 왕래는 시장의 냄새를 팍팍 풍겨 낸다.

 

동쪽에 있는 예촌망 바다 언덕의 동양화도 훼손되었다. 이곳은 인간이 더럽힌 것이 아니라 자연이 시샘한 꼴이 되었다. 어느 때 부터인가 태풍이 오면 늘 이곳을 괴롭혀 바닷가로 난 작은 길을 없애 버리더니 단애도 허물기 시작했다. 멋진 풍경을 망가뜨리는 것도 부족했는지 바닷물에 떠다니는 스치로폼 같은 부유물질을 가져다 해변에 쌓아 놓아 그림을 더욱 망쳐 놓았다.

 

문화재청은 지난 2011.6.30.자로 쇠소깍을 명승 제78호로 지정했다고 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럽다고 할 수 있다. 쇠소깍의 물속에서는 한라산에서부터 지하로 흘러 온 물이 솟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이곳은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는 신성한 장소로 사용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돌을 던지거나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쇠소깍이 동양화로 계속 남아 있길 바라는 마음은 욕심일 것이다. 350여 년 전 하효마을의 어느 부잣집 외동딸과 그 집 머슴의 아들 간에 얽힌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면서 여러 방향에서 각색이 되었듯이 자연도 세월에 의해 변화되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에 인간이 더욱 변화를 부추기면 그때는 구겨진 종이만이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출처 : 유유의 습작노트
글쓴이 : 봉명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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