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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허풍 掌風

허풍 掌風

 

지구상에서 가장 虛風이 심한 것을 나열하라면 아마 중국 武俠小說에 있어서의 掌風이 한 몫 할 것이다. 掌風은 손에서 나오는 바람을 일컷지만 절대 손바람이라고 번역하지는 않는다. 손바람은 손을 까불어 나오는 바람 또는 손으로 하는 일이 잘 풀릴 때 쓰는 말이기 때문에 싸울 때 쓰는 용어인 掌風과는 구분된다. 물론 억지로 손바닥 바람이 라고도 하지 않는다. 掌風은 해석하지 않고 그냥 掌風이라고 한다.

 

掌風은 손 안에서 바람을 일으켜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보내 타격을 입히는 무술 즉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맨손에 氣를 넣어 싸우는 기술이다. 掌風은 촛불을 끄는 시범을 보여 주며 정통으로 배우고 꾸준히 연마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수련방법의 난이도가 매우 높아 쉽지 않을 뿐이라고 한다. 실제로 청와대 경호원 무술사범 출신의 한 특공무술인이 보호구를 착용한 상대의 갈비뼈를 掌風으로 부러뜨렸다는 말도 있다.

 

그렇지만 중국 武俠小說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나무를 쓰러뜨리거나 바위를 부순다는 것은 인정하기가 어려워 단지 소설속의 망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掌風을 일정 수준 연마하면 단순히 손으로 바람을 일으켜 상대방을 타격하는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무술의 高手들은 일반 掌風에 맞고는 까딱도 하지 않기 때문에 掌風에 새로운 술법을 추가해야 한다.

 

무술의 원조격인 小林 72藝에는 鐵砂掌, 合盤掌, 推山掌, 追風掌 등의 장법이 있고 丐幇의 亢龍十八掌과 같이 少林 이외의 일반 幇派에서도 독자적인 掌法을 전수하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毒沙掌, 五毒掌 등과 같이 손바닥에다 毒을 넣어 바람을 통해 상대방을 중독시키는 술법 뿐만아니라 불보다도 강한 열기를 내뿜어 상대를 태워 죽이는 紅炎掌, 순식간에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寒氷掌 등 뻥튀기 수준이 한이 없다.

 

掌風은 그래도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拳風은 전혀 불가능한 것인데도 掌風과 더불어 연마된다고 한다. 百步神拳은 少林 72藝속에 들어 있다고 하는데 주먹을 내지르면 백보 밖에 떨어져 있는 바위가 산산조각난다고 하는 권법이어서 소림사 승려들도 배우기 어려운 무술이라고 뻥을 친다. 無影拳은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이 펼치는 권법이어서 상대방이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당하고 만다는 도식을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늘날에 약간의 拳風만 익힐 수 있다면 권투와 K1 등 각종 격투기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며 올림픽에서도 많은 금메달을 딸 것인데 배우지 못해 애석한 일이다. 掌風과 拳風 보다 허풍이 더 심한 것이 指風이다. 彈指神通이라는 손가락 무술은 말 그대로 손가락을 퉁겨 바람을 내보내는 술법인데 손가락 사이에 돌이나 쇠구슬을 끼워 상대방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바람을 뭉쳐 멀리 보내 타격한다는 것은 말조차 되지 않는다.

 

武林小說의 완결 인물이라고 하는 金勇은 상상의 極에 달하는 指風인 “一洋指”를 만들어 냈다. 「天龍八部」라는 소설에 등장하는 一洋指는 大理國의 段씨 왕족에게 전해지는 무술로서 少林에서도 최고로 불리는 金剛指와 필적하는 비법이라고 했다. 손가락에 氣를 넣어 상대방에게 指風을 보내 이긴다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단순히 삿대질만 하면 죽어버리는 것이라 기가 찰 노릇이다.

 

虛風은 바람이 아니다. 없는 바람은 바람이 아니라는 말이며 흔히 써 먹는 말 그대로 뻥에 불과하다. 掌風, 拳風, 指風 모두 虛風이다. 빈 바람이다. 그럼에도 무협소설 애독자들은 이러한 언어를 좋아한다. 아마 이룰 수 없는 욕망의 대리만족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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