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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바람이 변화시켰는가?

바람이 변화시켰는가?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왔느냐?” 바람이 불지 않았으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떠한 바람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바람이 오고 가는 것을 변화시켰다고 암시한다.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화하기 마련인데 굳이 바람을 앞에 내세워 변명이나 구실을 마련하려는 인간의 마음을 탓할 필요는 없지만 햇볕과 달빛도 비도 기온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요소인데 바람을 변화의 대표로 삼는 것은 인간의 마음 자체가 바람 같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30년 만에 청풍을 찾아보았다. 아니 옛 청풍은 이미 호수에 잠겨있기 때문에 이곳이 청풍이라고 하며 만들어 놓은 곳을 보았다고 하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맑은 바람이라는 청풍은 산과 계곡, 강과 평야를 가로지르며 흘러내리는 바람이고 그 곳 청풍지역이 청풍을 느끼기에 적합했기 때문에 청풍이라 칭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제는 자취를 감추어 사실상의 청풍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충주댐으로 형성된 커다란 호수는 밝은 달의 운치를 오히려 돋보이게 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명월은 여전한데 청풍은 간 곳 없네!” 가 되어버렸다.

 

청풍의 경관이 오직 아름다웠으면 조선조 김일손이라는 옛 시인은 청풍을 떠나가면서 “열 걸음을 옮겨가며 아홉 번을 되돌아보았다.” 라고 아쉬움을 달랬겠는가. 이제는 달빛에 넘실대는 남한강 물결을 바라보기 적합한 한벽루가 아니다. 독경 소리 강물과 어울려 흐르던 향교의 정취도 사라졌다. 산 중턱에 새로 만들어 놓은 마을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옮겨 놓은 유물의 모습이 을씨년스럽기만 하고 박제품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에 맑은 바람이라는 청풍의 아름다웠던 명칭이 오히려 야속하기만 하다.

 

바람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게 한다. 비단 바람이 깎아 만든 예술품 같은 바위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에서부터 언어나 관습 및 마음속에 까지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정상적인 기존의 생활에 변형이 오게 되면 “바람났다” 고 하게 된다. 다만 발전을 가져오는 변화보다는 다소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강조한다는 점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바람이 변화의 주원인 이라는 점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바람 풍자가 들어가는 지명은 그리 많지가 않다. 옛날부터 변화가 심해지는 장소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지 않기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희구하는 바램이 반영되어 바람 풍자 지명을 사용하지 않기도 했을 법한 일이다. 서울의 풍납동이 풍자 명칭 지명의 대표적인 곳인데 바람이 돌아치는 이름 때문인지는 몰라도 백제 초기 도읍을 옮긴 직후부터 모습을 잃어버렸고 현재까지 정확한 풍납토성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도 명칭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바람을 막는 것을 바람막이라 한다. 병풍바위도 바람막이고 돌담이나 토성도 바람막이 이며 버너 주위에 치는 그것도 옷의 바람막이도 말 그대로 바람막이다. 심지어 투전판 주변을 감시하거나 술집 앞의 호객꾼도 바람막이라고 한다. 외부의 영향을 보호하기 위한 나아가서 현 상태에 변화를 주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을 바람막이라 통칭한다.

 

오늘날에는 전통이나 고전을 보호해 줄 바람막이가 없어졌다고 한다. 애석한 일이지만 굳이 바람막이를 새로 만들거나 있는 것조차 활용하려고 안한다. 이는 곧 변화를 바란다는 뜻이 아닐까? 바람은 항시 분다. 그래서인지 옛 것이 그대로 유지될 수도 없다. 바람은 늘 똑같이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감성적인 사람들이 바람 불 때 향수를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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