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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폭풍 속의 파랑도

폭풍 속의 파랑도

 

날서방은 태풍이 오는 밤이 되면 매우 바쁘다. 지난달 조업 나갔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아니한 친구네 집 지붕이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새끼줄을 들고 두 시간 동안이나 일을 한데 이어 처형네 집으로 달려가 집안으로 무너진 돌들을 밖으로 꺼내야 했고 이제 한시름 놓고 자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강풍으로 무너진 통시에서 도새기가 달아나자 발을 동동 구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새댁이 안쓰러워 밤새도록 도망간 돼지 새끼를 기필코 잡아 와 가두어 놓고야 말았다. 파김치가 된 몸이지만 마음만은 뿌듯하였다.

 

파랑도에 사는 사람들은 폭풍에 약하다. 큰 바람만 불면 머리가 서고 닭살이 돋으며 정신도 혼미해 진다. 특히 밤이 되어 바위틈을 뚫고 나오는 날카로운 칼바람소리만 나면 뼛속이 깎이고 영혼이 달아나는 고통을 맛보고 살아야만 한다. 비록 땅이 넓기는 한다지만 육지에서 멀리 떨어지다 보니 항시 바람의 영향력은 주민들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마을사람들은 바람을 피하기 위해 가능한 땅 바닥에 붙어살게 되었다. 집을 반 지하 형식으로 건축하게 되었고 창문은 조그만 틈만 내고 처마도 바닥에 붙을 정도로 낮게 만들었는데 그렇게 생활하게 되다보니 사람들의 체형과 습관이 땅에 가깝게 되어 버렸다.

 

파랑도에는 여자들이 많이 산다. 대부분의 섬 마을은 남자들이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혀 죽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과부가 많을 수밖에 없지만 파랑도에는 특히 정도가 더 하다. 그것은 과부탄이나 총각잡이암초와 같이 물살이 아주 거센 바다지역이 많아 상당수의 어선이 난파되어 대부분의 어부가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겠지만 어릴 때부터 여자는 바람에 강해 많은 수가 살아남았으나 남자애들은 까불다가 일찍 죽기 때문이기도 하다.

 

파랑도에는 많은 수의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필리핀이나 베트남의 어부가 난파선에 이끌려 흘러 왔다가 돌아가지 않고 그냥 머물러 사는 경우도 있고 옛날부터 유배지로 선택되어 조정에서 밉보인 사람들을 추방해 살도록 하였는가 하면 반역죄 등으로 자진하여 도망 나와 사는 사람들도 꽤나 된다. 각기 각종의 인종들이 모여 살지만 대부분을 이루는 것은 5개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몽골민족이나 오키나와 어부 등 그 수를 알 수 없는 귀화인들이 날씨나 얼씨 등 영향력있는 성씨를 빌려서 같이 쓰기 때문일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이들이 오래전에 섬을 점령해 원주민들을 지배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뭉생원은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요지부동이다. 옆집의 아낙이 강풍으로 집이 무너져 이년 살리라는 외침소리가 들려도 모른 척 한다. 다만 수없이 넘겨 낡아 헤진 책만 읽고 있다. 그러다가 인근에 살고 있는 여자들이 잘났다는 등 궁시렁 거리며 욕하는 소리가 들리는지 불을 꺼버리고는 마누라 등을 두드리며 태풍이 금방 가버릴 것이라고 안심시켜 주기만 한다. 가정은 평안하고 몸도 편하게 지내고 있기는 하나 무엇인가 알 수 없는 마음이 껄적지근 할 때가 많다.

 

날서방은 시집 온지 일 년도 되지 않아 남편이 다금바리 잡으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청상과부가 되어버린 새댁 병문안을 갔었는데 새댁에게 붙잡혀 하루 종일 머무르며 이 얘기 저 얘기 해주면서 위로를 했다가 집으로 돌아와 치도곤을 당했다. 그렇지만 내일 다시 오마 약속했기 때문에 또 새댁에게 가야 했으며 몸이 아프니 밤도 무섭다고 앙탈하는 바람에 몇 날 밤을 같이 보내주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친구가 죽기 전에 부탁한 친구 부인을 혼자 외톨이로 놔 둘 수도 없어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그녀를 반드시 찾아 주어야만 했다.

 

이러한 날서방의 희생정신과 박애주의는 파랑도 여인들의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어 시기와 질투의 화신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파랑도에는 날씨 성을 쓰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 되며 이어 얼씨가 많고 펑씨, 귤씨가 어느 정도 있고 5개 성씨 중 뭉씨는 가장 적은 수가 되어있다. 날씨는 모든 사람들을 어우르고 특히 혼자 사는 여인들을 불쌍히 여겨 서로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었기 때문에 자손이 많은 반면 뭉씨는 자신의 가족만을 지켜 왔고 고상한 척 했기 때문에 후손이 귀한 편이다.

 

이로 인해 파랑도 도주는 거의 날씨가 맡아왔고 타 성씨가 반발하면 어쩌다 얼씨에게 권력을 넘겨주기도 했지만 날씨가 대부분인 주민들을 통솔하지 못하게 되자 다시 날씨가 돌려받게 되었으니 날씨의 힘은 절대적이었으며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뭉씨는 언제나 눈치를 보아야만 했다.

 

오랜 기간 동안 파랑도에서는 남자들이 일을 해오지 아니한다. 여자들이 남자가 조업을 하러 바다에 나가려 하면 아니되옵니다 하면서 적극적으로 말린다. 먹고 사는 것은 이년이 알아서 할 터이니 남자는 몸조심만 하면 된다고 한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남자의 중요 역할이다. 그래서 남자들은 다수의 여자들을 데리고 살아도 되며 배다른 자식이 당연시 받아들여진다.

 

그렇다고 여자들의 포용심이 크다는 것은 아니다. 불만을 표시하면 남자의 손길이 뜸해 지는 등 결국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겉으로는 절대 들어내지 않지만 속으로는 더욱 곪아 간다. 여자들끼리 매일 매일 붙어 다니며 물질을 하고 검질을 매며 식개집 부엌살림을 하면서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다. 이래서 파랑도 여인의 몸과 정신은 강한 모양이다.

 

파랑도의 바람은 어느 곳에서 불어오는지 알 수 없다. 출발점도 없고 종착점도 알기 어렵다. 회오리바람도 돌개바람도 아니지만 도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이리 불었다 저리 불었다 한다. 바람 따라 사람들은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바람은 파랑도에서 예전에 누가 살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만 결코 말하는 법이 없다. 사람들이 바람에 순응하는 한 바람은 굳이 사람들을 등지려 하지 않는다.

폭풍 속의 파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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