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목욕 시간
유유
오래 살다 보면
원하든 원치 아니하든 이끼 옷을 입어야 하고
온갖 곤충과 동물들의 배설물을 받아
육신은 더러워지는 법
그래서 자주 몸을 씻고 싶건만
세상일 어디 뜻대로 되는 경우가 많으랴
그런데 인간이 싫어하는 태풍이
바위에게는 때 빼고 광내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바위라고 늘 침묵의 참선만 해야 할까
참았던 숨을 내쉬고
지축을 울리는 사자후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태풍만이 도와주도다
목욕한 후의 개운함
무게의 바위가 날고 싶다고 하면 절대 안 되겠지만
깊은 산 속에 숨어 사는 처지에서
태풍아, 고맙구나!
<태풍 송다가 지나간 뒤의 한라산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