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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자연

[스크랩] 배롱나무의 독백

 

 

 

 

 

배롱나무의 독백

 

요리 곱게 피어도 보아주지 않나요

백일 동안 홍조 보이며 유혹해도 눈길조차 주지 않나요

나를 알아주던 오랜 친구만 생각나게 하네요

오래 서 있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네요

멋있는 모습도 너무 오래 보면 질리나 봐요

 

꽃만 오래 피어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잎의 푸름과 붉은 단풍도 백일은 간답니다

그래도 눈여겨 보아주지 않네요

첫눈에 반한 것이 아니라 그런가요

너무나도 질긴 끈기에 겁먹어서 그런가요

 

백일홍이라 안 하렵니다

천일홍이 나타나 기분 나빠서도 그렇고요

천리향 만리향 자랑하는 꼴도 보기 싫고요

백양금 천량금 만량금 멋대로 이름 붙이라고 하지요

나는 그냥 배롱나무 할래요

 

원래는 사랑 먹고 살았답니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나도 사랑을 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뭐 그렇게 삽니다

간지럼 피우면 손 흔들어 주는 정도로 삽니다

득도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출처 : 유유의 습작노트
글쓴이 : 봉명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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