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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문

[스크랩] 아르헨티나 호텔의 악몽

아르헨티나 호텔의 악몽 - 터져버린 노랑풍선

 

우리 중남미여행단 일행이 이과수폭포 관광을 마치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 것은 12월초 저녁시간이 임박해서였다. 30분간의 시간을 받아 짐을 풀고 저녁식사 장소로 출발하기 위해 서둘렀다. 그런데 2층 구석에 위치한 방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눈이 크게 떠졌다. 그렇거나 말거나 우선 급하다고 화장실에 들어간 마눌님이 문이 안 닫힌다고 불평했다. 지극히 좁은 방에서 문을 연 채 변기에 앉아 있는 여인이 볼일을 볼 수 있겠는가?

 

단체여행을 할 때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보통 방 배정을 결정한 후 인솔자로 부터 열쇠를 받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는 처음부터 이상했다. 카드 키가 아닌 현관 열쇠처럼 생긴 막대를 죽 늘어놓더니만 팀별로 하나씩 골라 가라했다. 무언가 느낌이 안 좋았지만 앞에 서있는 순서대로 하나씩 집어 들었다. 그리곤 각자 방을 찾아 갔다.

 

방문을 연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거 뭐 이래!, 이건 호텔이 아니잖아" 우리 부부는 어둡고 침침한 복도 가장 구석까지 가서야 문을 열수 있었다. 경악스러웠다. 낡고 좁은 방에 작은 싱글 침대 2개가 놓여 있었는데 트렁크를 놓을 여분의 공간조차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화장실 문은 열린 채 닫히지 않았고 문과 문틀도 너덜너덜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복불복이라니, 어찌 이런 일이.......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하는 동안 현지 가이드가 버스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소개했다. 그 중 아르헨티나는 자부심이 강하고 미국을 싫어해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엄포성의 말이 생각났지만 어쨓거나 즉시 프론트로 가서 손짓발짓을 하며항의했다. 방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랬더니 인솔자와 현지가이드가 밖에 나갔기 때문에 5분 후에 들어오면 얘기하자고 하는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 왔다가 5분 후에 내려갔다. 그렇지만 "5분 후에"라는 말을 다시 들었을뿐이었다.

 

이제 출발 시간이 10분 남았다. 그때 현지가이드로부터 전화가 왔다. 급히 방으로 올라 와 보라고 했다. 방 꼬라지를 꼭 보여주고 싶었다. 아마 그녀는 상황을 아는 것 같았다. 방을 바꿔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인솔자가 바뀐 방 열쇠를 갖고 갖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복도에 나가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5분 남았다. 속이 타서 있는데 인솔자가 전화를 해 3층 호실을 말하며 찾아서 올라오라고 했다.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단 말인가!

 

무거운 가방 2개를 끌고 엘레베이터로 갔다. 자동이 아닌 수동으로 승강기 문 2개를 열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넘어져버렸다. 서두른 것도 문제지만 발목에 부상이 있는 터라 균형을 잡지 못해 좁은 공간에서도 쓰러지고 말았다. 감정이 솟구치기 시작하면서 복불복을 못했다는 등의 여러가지 이유가 거론되며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교체된 방은 좀 나은 편이었다. 물론 아주 좁았지만 침대를 양쪽으로 밀어 가방을 펼쳐놓을 공간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수준으로 치면 여인숙 규모라 할만한 시설이었다. 요즈음은 여관 또는 모텔만 가도 넓은 공간과 멋진 침대, 그리고 밝고 편안한 화장실로 짜여져 있다. 이런 숙소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직 옛 항구도시에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브라질의 리오에서 묵은 호텔이 생각났다. 마치 창고에 침대를 딸랑 놓아두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마 늦게 들어갔다가 일찍 나왔기에 빨리 잃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과수폭포에서 만난 중남미 관광 연합팀과 대화 과정에서 그들은 바닷가 멋진 호텔에서 묵어 파도소리에 시끄러워 잠을 깼다고 하는 반면 우리는 슬럼가 뒷골목에 위치한 낡은 건물에 들어갔다 나왔다는 그런 사실을 상기시켜 기분이 매우 나빠졌고 욕지기가 나왔다. 싼게 비지떡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그동안 멕시코시티의 모텔에서 묵었고 리오의 여인숙, 이과수의 여관,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숙집을 거쳐 칠레에서 호텔 구경을 하였다. 비록 4성급 호텔이었지만 건물 주변은 광장 같았고 주변 환경과 공기도 좋았으며 방은 넓고 더불침대 2개가 놓여 있었으며 환한 욕실에 각종 편의 제품이 놓여져 있었다. 제대로 된 관광객 대우를 받게 되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지 현지가이드에게 우회적으로 물어 보았다. 그러나 확실한 답변은 피하면서 "너무 하구먼"  했다.

 

 

 

아르헨티나의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하면서 호텔 방의 문제점에 대해 현지가이드에게 항의 했다. 그랬더니 방을 바꾸어 주었으면 되었지 않느냐의 인상쓰는 답변만을 듣고 울화통이 치밀었다. 하급 관광객 대상 식당에서 저급 수준의 탱고 디너쇼를 보면서 식사를 한 후 호텔로 돌아와 다시 한번 기분이 나빠지면서 방값을 알아 보았다. 

 

 

 

우리가 투숙한 방은 3종류라고 했다. 싱글침대 2개용(500페소), 더블과 싱글(600페소), 싱글 3개용(700페소) 등이 있는데 모두 다 다르지만 좁은 것은 비슷했다. 아르헨티나는 환율이 요동을 치고 있어 달러당 5-10배의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리고 방은 묶음 판매를 해 할인한다고 하니 정확한 가격은 알기가 어려웠다. 호텔의 위치와 시설이 후진 것을 감안하면   아마 우리 돈으로 1만원-5만원 정도 할 것이라는 느낌을 들게 하였다.

 

 

 

잠을 자면서 배까지 아파왔다. 좁은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잠을 설치고 아침이 되어 식당으로 내려갔다. 먹을 만한 음식이 없었다. 다시 좁은 방으로 돌아왔다. 젠장 10시나 되어야 출발한단다. 칠레의 좋은 호텔방은 아주 짧은 시간 머물었던 점을 비교한다면 좁고 더러운 곳에서 오래 머물게 했던 사례는 악몽이 되어 두고두고 머리를 아프게 하였다.

 

더 큰 악몽은 출발 직전에 나타났다. 귀중한 아침의 긴 대기시간이 무료해 배낭을 짊어지고 호텔 문 밖으로 나갔다. 호텔은 좁은 골목에 자리잡고 있었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조금 벗어나 인도를 걷다가 보니 갑자기 바지에 오물이 묻어 있어 닦아내기 시작했다. 어느 여인이 휴지를 주었다. 배낭을 벗어 가판대 옆에 기대어 놓고 등을 닦느라 몇초간 방심을 했는데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손짓을 했다. 아차하고 내려다 보는 순간 배낭이 없었다. 손가락으로 가르치는 방향으로 뛰었다. 움직인 것이 잘못된 일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것이 끝났다. 멘붕이 일어났다.

 

 

 

애지중지하며 갖고 다니던 DSLR과 축복렌즈 그리고 휴대폰을 비롯한 모든 일상용품이 훨훨 날아가 버렸다. 불행중 다행이랄까 여권과 지갑은 주머니에 있었다. 출발할 때부터 기분이 묘했는데 기여코 일이 발생하고 만 것이다. 누굴 탓하랴!

 

현지가이드에게 일단 이야기를 했다. 무슨 말이 없었다. 인솔자가 대처 방법을 제시했다. 여행 대열에서 벗어나 경찰에 신고를 한 후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동시에 말이다. 또한 여행자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런 후 귀국하여 카메라 구입 영수증을 첨부해 판정을 받으면 최고 3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동반자들의 여행 일정에 차질을 줌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 했다. 배낭 분실에 대해 함구토록 하였다, 그랬다가 저녁시간이 되어 아르헨을 떠날 때 고백을 하였다. 마음이 매우 아팠을 것인데도 대범하게 대처했다는 어느 동반자의 위로를 들으면서 울음을 삼켜야 했다.

 

우리 가족은 2000년 전후 노랑풍선여행사 초창기 이용을 했다. 몇달전에도 중국을 다녀왔다. 그래서 약간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번 중남미 여행에도 노팁 노옵션이라고 부르짖는 상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노팁이라 하지만 이런 저런 명분으로 170달러를 미리 내 놓았다. 하지만 이런 정도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렇지만 호텔의 선정과 관광객을 대하는 행태 및 식사 등에 있어서 맘에 들지 않는 점이 너무 많았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마음 속으로 노랑풍선을 터뜨려버렸다. 다시는 노랑풍선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기로 마음을 다졌다. 여행사는 많다. 물론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여행사는 없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좀 더 약간이라도 좋은 점이 있는 여행사를 찾아 보려는 것은 인지사정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출처 : 유유의 습작노트
글쓴이 : 봉명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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