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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이 몸이 제주바람을 어찌 좋아 하오리까!

이 몸이 제주바람을 어찌 좋아 하오리까!

 

아주 오래 한 해녀생활은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무척 힘들었다. 바람 때문이다. 뭍으로 돌아오는 오늘의 물길은 여느 물길과 달랐다. 큰 바람이 만들어 놓은 높은 파도도 문제거니와 앞바람을 거슬러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가기가 너무도 힘에 벅찼다. 서너 시간 동안의 잠수 노동으로 기력이 빠지긴 했지만 충분히 견딜만한 체력을 갖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오늘따라 정면에서 몰아치는 바람을 가르는데 사력을 다하여야 했다.

 

작년 이맘 때 갈치 잡이 배를 타고 나갔던 남편이 강풍으로 인해 배가 뒤집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않음으로 인해 청상과부가 되었을 때부터 바람은 원수가 되어 있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살면서 바람을 등지며 생활할 수는 없다. 그래서 되도록 바람에 순응하며 적응하려고 바람을 좋고 좋게만 생각하려 노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바람이 남편을 데려간 이후부터 매순간 바람이 원망스럽고 무섭기만 하다.

 

바람이 싫다 보니 더욱 바람과 부딪치는 일이 늘어 간다. 며칠 전에는 몸서리치는 일도 있었다. 밤에 폭풍이 온다고 하여 없는 힘 있는 힘 다 써가며 초가지붕에 새끼줄 매기에 온갖 노력을 했고 간신히 돌까지 올려놓았다. 그런데 막상 밤이 되어 돌풍이 몰아치자 지붕은 마치 흙먼지 날리듯 허공으로 날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컴컴한 밤중에 간신히 늘어진 새끼줄에 몸을 매달고 조금이라도 지붕이 남아 있도록 발악을 했건만 집은 뼈대만 남긴 채 시커먼 하늘이 눈에 보였다. 그뿐이랴! 바람이 몰고 온 장대비는 세차게 몰아치기 시작하니, 애고! 애고! 어쩌란 말이더냐! 이곳이 집인지 뜰인지 분간을 못하면서 젖은 이불 둘러쓰고 추위와 공포에 떨면서 새벽이 올 때까지 그 얼마나 울었던가! 바람소리는 또 왜 이렇게 신경을 찢고 설움을 북받치게 하던가 말이다.

 

옆집에 남정네 있건만 자기 집 지붕만 날아가지 않게 손질하면서 여자 혼자 사는 옆집의 지붕 날아가는 모습은 바라만 보았을 것이다. 살려 달라 소리치는 이년의 고함소리는 물론 밤새도록 귀신소리 내며 울고 있는 한 맺힌 목소리를 듣기는 들었을 터인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마누라한테 꼭 잡혀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그 집 여편네 질투심이 지독하여 도와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생명이 오가는 순간에 그 무슨 값 비싼 질투심이란 말인가? 아침에 고개를 푹 숙인 채 바람소리가 요란하여 어떤 소리도 못 들었다고 하는 그치 말이 더욱 기가 막혔다.

 

바람은 왜 이리 이년만 괴롭히는지 알 수가 없다. 나쁜 바람일지라도 때론 좋은 일 한번쯤 하면 안 되나? 동짓달 긴긴 밤 이 몸 외로울 때 강풍이 나를 날려다 언덕 너머 마을의 멋진 그 사내 집 안방에 떨어쳐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아니지 그 집 아낙 눈꼬리 사나워서 안 되지! 차라리 그 사내를 붕 띄워 이 몸 곁으로 보내주면 좋으련만! 바람이 그럴 일 없고 이 년도 어찌 그런 복이 잠시라도 있을까!

 

오래된 자리젓마냥 축 처진 몸뚱이 이끌고 집에 돌아가는 길 조차 바람이 방해한다. 갑자기 나타난 회오리바람이 화장 한 번 못해 푸석해진 얼굴을 할퀴더니 가시 달린 모래를 눈에 넣고 달아난다. 순간 눈을 닦느라 앞을 못보고 힘없는 발끝도 돌부리를 감당하지 못하니 앞구르기에 맨땅 박치기가 웬 말이던가. 천신만고 끝에 기어서 집에 와 보니 아침에 널어놓고 나간 갈옷이 온데 간데 없네! 비록 넝마 같은 옷이건만 큰일 때 입는 중요한 옷인데 걱정스러워 이곳 저곳 둘러보니 저 멀리 진창에 박혀있었네. 바람이 왜 이런 심술을 부릴까? 이 몸에게만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바람아! 바람아! 정말로 미운 바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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