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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필과 산문

바람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바람 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요즈음에는 시골 일부 농가에서나 겨울나기 위해 무와 배추를 땅에 묻고 있지만, 예전에는 대부분 가정에서 이 방법을 사용해서 채소를 월동시켰다. 가을철 김장에 착수하기 직전 남자들은 김장독을 묻기 위해 언 땅을 깊게 파게 되는데 이때 월동채소를 묻을 수 있는 구덩이도 같이 파야 하는 것이 맡겨진 임무였다. 무는 겨울 내내 깍두기 같은 반찬 재료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무밥을 하고 무국을 끓이는 등 각종 식자재가 되어야 함에 따라 땅속 보관방식이 매우 유용한 것이었다.

 

  초겨울에 언 땅을 판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 곡괭이가 튀어 오르며 손아귀가 아픈 것을 참고 매년 동일한 장소에 무를 묻었건만 금년 무 속엔 바람이 들어 버렸다. “사람이 부실해 지더니 무까지 바람이 들었다.”라고 넋두리하는 아낙네의 절박한 목청을 애써 외면하고 무를 묻을 당시를 반추해 보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장소도 같은 곳이고 특별히 응달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으며 짚과 거적 등도 풍성하게 덮었는데 유달리 올해 들어 무가 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삼 지관을 모셔다가 땅심을 살펴볼 수도 없었고 지하수 물길이 바뀌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계를 빌려 측정해 볼 상황도 아니므로 궁금증만 더해가며 다음엔 다른 장소로 옮긴다고 결정하는 것 이외에는 대책이 없었다.

 

  그렇게 무심하게 지나갔다. 외형상으로 바람 든 무를 식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 바람 든 무도 싱싱한 것과 마찬가지로 푸른색과 흰색 껍질이 조화를 유지한 채 일정 기간 맑은 빛을 띠고 있다가 시일이 지나면서 겉부터 무르고 검게 썩기 시작한다. 잎사귀가 있으면 이를 보고 다소는 구별해 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이 중간을 잘라 보아야 바람 들었는지 아닌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바람 든 무는 중간 내용물이 푸석푸석해지고 가운데는 텅 비어 있으며 무의 최고 가치인 비타민도 파괴되기 때문에 무조건 버려야 한다.

 

  바람이 드는 것은 비단 무만이 아니다. 인간의 육신에도 바람이 든다. 우리는 흔히 “허파에 바람 들었다.”라는 우스운 말을 종종 한다. 폐와 폐를 둘러싼 흉막에 공기나 가스가 차는 병을 기흉이라 한다. 기흉에 걸리면 통증 때문에 웃을 수가 없다. 기흉은 사망까지 이르기 때문에 결코 우스운 병이 아니다. “허파에 바람 들었다.”라는 말이 “육체에 병이 생겼다”라는 말이 아니고 “마음속에 병이 들었다.”라는 의미라고 하지만 어찌했던 실제 허파에 바람 들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폐가 공기와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한 “간덩이가 부었다.” 라는 말도 “간에 바람이 들었다.” 라는 말과 같이 쓰인다. 이 용어도 간에 병이 생긴 것보다는 “정신에 이상 현상이 나타난” 상황을 풍자하지만 실제로 간에 바람이 들어 부풀어 오르면 심각한 병으로 발전하고 합병증까지 유발한다. “염통까지 바람이 들어찼다.” 라는 말도 같은 용어다. 이는 부풀어 오른 심장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대망상이 끝 간 데 이른 것을 강조한 말이다. 인간 육신의 내장에 공동 현상이 생기면 옛말로는 “풍이 들었다.” 라고 하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가스가 찼다.” 고 하며 학술적으로 접근한다.

 

  우리 몸에서 모든 장기가 바람 들면 안 되지만 특히 바람이 가장 많이 드는 부위가 뼈인 만큼 뼈가 바람 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뼈에 바람이 든 병을 한의학에서는 근골동통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했고 현대의학에서는 골다공증으로 통칭한다. 사람들이 살면서 뼈를 오래 사용해서 그럴 수도 있고 식생활이 나쁘거나 산후 조리가 부실해서 뼈에 바람이 들 수도 있다. 바람 든 무 중간이 텅 비는 것처럼 뼈도 바람이 들면 중간 골수가 사라진다. 바람 든 무는 버리면 되지만 인간의 뼈는 버릴 수가 없다. 겨울철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면 뼈마디가 더욱 쑤시고 힘을 쓰다 보면 뼈가 부러져 버리는 현상이 온다고 해서 그 뼈를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채소에 바람이 들어도 안 되고 육신에 바람 들어도 안 되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에 나쁜 바람이 드는 것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마음에 바람이 들면 우선 허황한 꿈이 찾아온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판단하며 공상이나 과대망상을 현실로 착각하게 된다. 강하고 강한 두개골로 단단히 싸여 있는 뇌에 바람이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은데도 머릿속에 바람이 든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두뇌에 바람이 든 것 하고 정신에 바람 든 것하고는 다를 것 같지만, 연관성이 있다. 땅에 뭍은 무가 바람이 들어 버리게 되면 원인을 분석하여 다른 장소로 옮기거나 좀 더 나은 방한 장치를 하게 된다.

 

  이제는 땅에 묻지도 않고 기술력을 활용한 냉장 보온창고에 보관하게 되며 각 가정에서도 냉장고 나아가 김치냉장고를 사용해 바람이 들지 않도록 할 수 있다. 몸속에 바람이 들어 생긴 병도 갈수록 쉽게 치료할 수 있는 의학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허파에 든 바람도 빼고 장기 사이에 차여 있는 가스도 뽑아내는 등 치료를 함과 동시 바람이 들지 않도록 하는 예방조치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뼈에 바람이 드는 골다공증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구와 개개인의 대처도 향상되어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바람은 치료는커녕 점점 그 도가 심해져 가고 있으면 전염까지 되고 있어 심각하다 할 수 있다. 순간 들이치는 정신적 나쁜 바람은 꿈처럼 깨면 되나 “바람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조차 모르게 마음에 바람이 들이치면 파경을 맞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그러므로 마음속에 바람이 들기 전에 막아야 한다. 바람 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선 현실의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지나친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이고 명확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며 다음으로 자신을 알아 대입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주제 파악과 현실 적용이야말로 마음속에 바람이 드는 것을 막는 지름길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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