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시-자연

[스크랩] 곶자왈 길을 걸을 땐

 

 

곶자왈 길을 걸을 땐

 

                               유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뜻 모를 슬픔이 오는 듯 사라지며

사랑도 미움도 본래부터 없었다 느껴지고

손톱에 난 가시조차 까마득하게 잊혀져 버린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있는 곳

태어나고 죽고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찰나에 스쳐 가는 햇볕의 갈증에 애간장 태우고

사라진 자와 남아있는 자 간의 대결 흔적만이 있는 곳

 

앞서 나아갈 필요도 없다

길이란 걸어갈 때야 비로소 길이 되니

앞에서 낙엽이 굴렀다거나 뱀이 지나갔다거나

길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그 길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무와 돌이 모여 사는 곳

새와 노루는 손님 되어 드나들고

도롱뇽이랑 나비는 아주 눌러살아 버리고

인간들도 꼽사리 끼어 달라고 귀찮게 건드리는 곳

 

곶자왈 길을 걸을 땐

등산화 끈을 단단히 조여야 한다

모자도 쓰고 땀 닦을 수건도 챙겨야 한다

마음이 편안해 져서 몸이 풀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출처 : 유유의 습작노트
글쓴이 : 봉명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