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기행문

[스크랩] 하회마을 부용대와 겸암정사


안동 하회마을을 한눈에 바라다볼 수 있는 곳이 부용대이다.

는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안동하회마을의 서북쪽 강 건너 광덕리 소나무 숲 옆에 있는 해발 64m인 절벽으로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하는데 하회마을이 연꽃모양으로 생겨 연꽃을 바라보는 무대라는 이름으로 붙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북애()라 했는데 이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며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와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부용대로 오르는 길은 3곳인데 하회마을에서 배를 타고 건너서 오를 수가 있고 하회마을에서 볼 때 강의 오른쪽과 왼쪽편으로 올라갈 수 있는 코스가 있다. 부용대로 오르는 산길에는 특이한 소나무가 많이 있다.




땔감을 준비해 길옆에 모아놓은 듯한 모습이 눈에 뜨인다.



오르는 길 절벽 위에 있는 소나무인데 서 있는 자세가 매위 위험해 보였다.

절벽 밑으로 하회마을을 돌아 흐르는 강이 보인다. 



아침 역광으로 인해 선명하게 볼 수 없는 상태





하회마을을 돌아보며 내부만 주로 보았는데 부용대에서 보면 넓은 모습을 크게 볼 수 있다.




부용대에 설치해 놓은 하회마을의 사진인데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의 집을 중심으로 발달한 고택과 정자 등 마을의 세부 건물을 표기해 놓았다.




겨울철이라서 관광객이 없는 한가한 모습이다.


 


부용대를 내려 오면 하회마을과 나룻터로 연결되는 언덕 지점에 고택이 하나 있다.



바로 겸암정사라 한다.

舍는 중요민속자료 제89호로 지정된 문화재인데 유성룡()의 맏형인 운룡()이 1564년(명종 19)에 지었다고 한다. 위치는 하회마을 북쪽 화천()을 끼고 우뚝 솟은 부용대()의 서쪽, 옥연정사()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강가 전면에 정사의 몸체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크기로 자형 평면을 이루면서 자리잡고 이의 뒤쪽에 살림채가 ㄱ자형 평면을 이루면서 자리잡고 있다.


겸암정사에서 밖으로 나가는 쪽문으로 산책할 때 사용했다고 한다.



정사 몸체는 누()의 형식을 갖추어서, 동쪽 면 누마루 밑으로 정사 마당에 출입할 수 있다. 정사의 온돌방과 대청에의 출입은 살림채와의 사이에 세운 대문을 들어가 정사 몸체의 대청 뒷벽에 단 문을 통하여만 가능하다.

즉, 정사 몸체 뒤쪽은 대청에 여닫이문만 두고 모두 벽체를 쳐서 살림채가 들여다보이지 않게 하였다. 막돌초석 위에 두리기둥을 세워 굴도리로 결구하였는데, 기둥 윗몸에 익공모양의 부재를 내었으나 주두가 없는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다.

살림채는 두리기둥 위에 주두를 얹고, 익공모양의 부재를 내어 퇴보를 받치며 창방 위에 소로를 놓아 도리 밑 장여를 받치고 있는 홑처마의 팔작지붕이다.


굴뚝도 옛 모습 그대로이다.




하회마을로 가기 위한 나룻터로 내려가는 길.

ㅅ상당히 비탈져서 위험해 보인다ㅏ.



겸암정에서 내려다 본 모습.




겸암 류운룡은 이퇴계의 제자로 서애 류성룡 보다 학문이 더 높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고 이곳에 서재를 만들어 후학을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겸암재에서 하회마을을 바라다보는 일 외에는 할 일이 없을 것 같다.

세상과 단절되어 오로지 책을 읽는 것 말고는 소일거리가 없으니 자연히 학식은 높을 수 밖에 없으리라.



겸암정사에는 류운룡의 12세손이 살고 있다.

고택 체험 숙소로도 활용하고 간단한 전통차도 팔고 있어 지나가는 관광객의 쉼터로도 활용된다.



고택 지붕 위에는 와송이 자라고 있었다.

겨울이라서 앙상하게 마른 와송이 세월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댓돌 옆에도 바위솔 한 떨기가 예전에 산 흔적을 표시하고 있다.




출처 : 인생의 습작노트
글쓴이 : 유유 원글보기
메모 :